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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번리 시위 | 녹번리에서는3월 23일밤만세시위가일어났다. 이날시위 에서 7명의 주민이 검거되어 헌병주재소로 끌려갔다. 3월 24일에는 다시 녹번 리에서 200여 명의 주민들이 전날에 이어 다시 시위를 일으켰다. 군중들은 독 립만세를 연달아부르면서 헌병주재소측에 전날밤 검거된 지도자7명의 석방 을요구하였다. 주재소측이 이를거부하자 주민들은주재소건콸안으로진입 해 구속된 자들을 빼내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연락을 받고 들이딱친 경성분대 헌병 병력에 의해 잔압 • 해산되었고, 24명이 추가로검거되었다 | 신사리 시위 | 은평면 신사리에 거주하는 김명순歸/I따(당시 24세, 농업)과 김윤정&|펴빼(당시 26세) • 역촌리의 문도치文道致(당시 28세 농업) • 김춘수金春 洙(당시 44세) · 김점성金點成(당시 30세) 동은 3월 23일 밤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김명순은월암산에서, 문도치와 김춘수는 당제산에서 김점성과 김윤정은 신사 리 동네안에서 많은 주민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했다. 이들은 독립만 세를부르지 않으면 불을 놓는다고 하며 주민 50여 명과 함께 월암산에서 만세 를불렀다. 문도치는 40여 명의 주민들과 당재산봉수대에서 불필 r 피워 올리며 만세를불렀다. 3월 23일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김춘수는 홍춘기洪春뀔가 와서 사람 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으니 가보라고 하여 길거리로 나가니 과떤 많은 사람들 이 만세를부르고 있어 호수부근에서 만세에 동참하였고, 옆 동리에 불을 피워 올리고 있어 20여명과 함께 당재산에 올라 만세를 불렀다. 김윤정은 3월 23일 밤자기집 앞에서동리민 20여명과함께만세를불혔다.김명순 · 문도치 · 김 춘수는 징역 6월에, 김점성과 김윤정은 태형 90대에 처해졌다 .33) 숭인면 | 동묘및청량리당지시위 I 3월 23일오후에는고양군각처에서적게는50 33) 경성지방법원, 「김병순 둥 5인 판결문」 , 1919. 5. 1; 경성복심법원 「김뜯수 동 판결문」 , 1919. 6. 1 9. 제3면 I 3 · 1독립운동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