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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도 없어지고 쌀값도 싸질 것으로 생각한다. ”고 함으로써 ll918년 8월 이후 폭등한 쌀값으로 언해 도탄에 빠진 민생의 참담함과 당시의 식민지 지배의 모 순을말해주었다. 정호석은 총독쩡치에 대한감상을 묻는질문에 대해 “독립하면 더욱 기쁘다 고생각한다.”라고했으며 독립만세를부르면무거운형별을받으리라는것을 알지만, “각오하고서 한 일이기 때문에 목숨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고 당당히 말했다. 28) 이렇게 하여 조선총독부 순사보조원 정호석에 의해 인도된 동막홍영여학교 교사 ·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다, 정호석의 용감한 행동은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 r독립신문』에 도 다음과 같이 보도되었다. 순사의단지|없指 3월 1일이라 열광한 군중은 대한문을 넘처 덕수궁내로 민불같이 밀어들 었다.대한문을지키는일순사가있으니고양군동막리에거하는정호석씨 라씨는그날시민의 열성에 김이 감동된바있어 가만히 집으로돌아가군 도重刀를 빼어 딴지斷指를결행코져 할즈음에 모진에게 발견 뚱지되엿다가 재차 입으로 무명지를 잘라 흐르는 선혈로 양목 2폭에 그리니 하나는 태극 기요하나는독립만세의 4자러라 이욱고긴장대에높이매달고동리소학 교에 들어가니 80여명 학생과직원이 호응하야 시위운동을 개시도1‘ 서소문 에 당도하여 붙잡혔다 신문시에 경관이 사택에 출장하야 단침한손가락을 강요하였으나 그 부인은 끝까지 내주지 않았더라 29) | 학생 이영준의 헌병보조원 동참 촉구 | 3월 9일 함경남도 덕원군 출신으 28) 「정호석 신문조서」,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13(삼일운동 lll); 독립운 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5(3. 1운동 재판기록), 111쪽 29) 『독립신문」(상해딴) ' 1919. 9. 13. 독자의편의를위해한지를한글로고치고,가능한현대표 현으로고침. 242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