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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대문네거리잡화점에서 45전을주고광목한자를샀다. 집에돌아와아내 에게 접시를가져오게 하여 칼을뽑아무명지 손가락을 베려고했지만, 아내와 어머니가극구말렸다. 이 때문에칼로베는것을포기하고이빨보무명지 둘째 마디를물어 돋어서 피가나케 하여 접시에 받았다. 그후사가지고온광목에 태극기 모양을그린 다음. 다시 집에 있던광목에 「天명대한국똑립만세」 라고 써서 대나무 막대기에 매어 깃대를 만들어서는그것을 가지고 동막흥영여학교 束幕興英女學校로가서 “대한국독립만세!”를외쳤다. 3월 8일 조선총독부 검사 야마자와山澤住-郞의 신문조서를 보면, 정호석이 홍영여학교를방문짜여 독립만세를부르자가장 먼저 그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딸이 나와서 아버지를따라독립만세에 동참했다고한다. 정호석이 깃대를흔 들면서서울로가려고하고,딸이아버지를따라오자, 학교교사오정화吳貞뺑와 박성철朴性哲을 비롯해그학교의 여학생 수십 명이 따라나와서 함께 독립만세 를 부르며 공덕리까지 갔다고 하였다. 한편으로 같은 신문조서에서 정호석은 “교사를비롯한학생들도모두기뻐서 따라왔었다.”고진술히눈것으로보아 교사와학생들에게 참여를독려하고교사와학생들이 이에 호응하}는과정이 있 었음을알수있다. 홍영여학교교사학생들의시위대열은공덕래까지와서 경 찰의 저지를 받았으며 그 자리에서 정호석은 체포되었다. 체포된 정호석의 호주머니에서 혈서와 피를 담은 작은용기가 나와 압수되었 다. 그는광무황제기-돌아가신덕수궁경비를서는순사보로서누구보다전황제 의 죽음을 빨리 알 수 있었다. 혈서의 내용은, ‘ 이왕 전하께서 다시 깨어나셔서 한마디 말씀이나마왕세자전하께해주시고 또2천만의 빈궁한백성을구제해 달라.”고비는내용으로이 혈서를간직하고다니다가발각되어 압수되었다. 그는국기를 만들고 혈서를 쓴 이유를 묻는 검사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신문에서 이번 강화회의에서 약소국을 독립시킨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조선도 독립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했다.”고 했다. 독립운동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삶에 쪼들리는 2천만 동포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답했 다. 그는 “독립하면 생활이 쉬워지리라 생각하는가?”라는 검사의 심문에 “쌀 제3편 13 1독립운동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