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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 용천 둥지에서 일어났다. 강원도에서는 3월 10일 철원에서 최초의 만세시 위가 일어났으며, 전북에서는3월 3일 전주 · 군산 · 이리에서 독립선언서가배 포되고 3월 4일 옥구에서 최초의 시위가 일어났다. 전남은 3월 3일 목포 · 광 양 · 구례 · 순천 · 여수 둥지에서 독립선언서가 배포되고, 3월 10일 최초의 시 위가 광주에서 학생렐에 의해 일어났다. 경남은 3월 3일 부산과 며산에서 독립 선언서가배포되고, 3월 11일 부산진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갱북 대구에서 는 3월 8일, 함북 성낀에서는 3월 10일, 충북 괴산에서는 3월 19엘 각각 최초의 시위가 일어나도내다른지역으로퍼져 나갔다.3월중순경에 들야서서는미-치 요원의 불길처럼 전푹 방방곡곡에서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3 · 1운동은최소한4월말까지두달간계속되었다 3월 1일부떠 4월 11일까 지는매일 10회이상시위가일어났으며 시위운동의정점을이룬4월 1일은하 루 동안 67회의 시위가 일어났다. 3월 27일과 4월 2 . 3일은 50화 이상 일어났 으며, 적어도30회 이상 일어난날만 15일이었다. 참여인원으로보면, 수십만이 참여한서울을제외하고서도, 의주 3만, 강회읍약2만, 합천삼가 1만, 선천 8천, 삭주군 대관8천, 선첸읍6천, 순천읍 5천, 명천군, 화대 5천 둥대규모의 시위가 많았다. 시위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시가지 대로상의 만세시위, 시 골장터에서 행한장터 만세시위, 야간산상의 봉화시위, 한장소에서의 1회성 만세시위, 같은장소에서 몇차례거듭된시위운동 인근지역을경.아다니며 행 한만세꾼들의 시위운동, 지역과지역이 릴레이로이어 받으며 행한릴레이 시 위운동,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사람의 시신을 떠베고 행한상여시위, 상점 문을 걸어 짐근상인들의 철시 시위, 학생들의 통맹 휴학시위, 노황자들의 파업, 광부들의 순시주재소습격시위, 어린이 시위, 거지들의 시위, 기생들의 시위 등 남녀노소, 신분의 귀천을가리지 않고전계층이 다양한형태로참여하였다. 이 렇게 행한총시위 회수는2,000회 이상, 연인원 200만이상으로추잔되었다. 대 부분의 시위는 평화척으로 진행되었다. 3월 1일부터 6월 1일까지 일본군경의 발포로인한시장자총수는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에 따르면 사망 7509명, 부상 15,961명에 이르나 일제 자료에는사망405명, 부장903명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국제적 여론과군대의 제3편 I 3 · 1독립운동 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