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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선천 · 원산에서도독립선언과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지역에는천도 교측과 기독교측에 의해 사전에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고, 사전 준비 작업 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양에서는오후 1시부터 예수교감리파와장로파신도들이 돌아가 신 광무 황제 봉도회奉|總를 칭하고 감리파는 감리교회에 800명이, 정-로피는 학교에 1 ,000명이 집합히-여 봉도회를 거행한다며 식을 시작한후 갑자기 「독립선언서」 를 낭독하고독립에 관한연설을한후모두손에손에 태극기를들고독립만세 를불렀다. 일본 경찰이 부랴부랴해산을 명하여 모임을끝냈으나, 해산한회중 들은 흩어지지 않고 시내로나가시위행진에 들어갔다. 이에 일본군 1개 중대가 삼엄한경계를폈다 그러나저녁이 되어도시위군 중은해산 할줍몰랐 다. 수비 대 응원대 7명이 포착하여 밤이 되어서야 시위운동이 끝났 다. 진남포에서는 오후 2시 예수교회에 기독교인 및 학생 약 130여 명이 모여 조 선독립만세가로쓴큰깃발을 앞세우고 「독립선언서」를길가에 뿌리며 만세를 부르고 시가행진을 하였다. 정주에서는 기독교인 300∼400명이 집합하여 오후 5시경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독립에 관한연설을시작하였다‘ 평안북도선 천에서는예수교소속성신학교생도수백 명이 오후 2시 「독립선언서」를배포 하고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연달아부르며 시위행진을 벌여 걷 !찰서와 군청에 쇄도하였다. 함경담도원산에서는오후4시 경 약 500명이 악대를선두에 세우 고 일본인 시기를 팽진했다. 조선인 거리에서는 약 2천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 데 독립에 관한연설이 있었으며, 일경이 쉽게 해산시킬수없어 일본인 소방부 들과 재향군인회까지 동원하였다. 3 . 1운동의확산 서울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시작된 3월 1일 평양 · 진남포 • 안 주 • 의주 • 선 천 · 원산등4개 s~ 7개 도 시에서 독립선언과시위운동이 일어났다. 이미 천도 교와 기독교 지D:}들에 의해 조직화되었기 때문이었다. 3월 2일에는 함흥 · 해주 · 수안 · 황주 · 중화 · 강서 · 대통둥지에서 일어났고, 뒤이어 3 월 3일에 는 예산 · 개성 • 사리원 · 수안〈제2채 · 송림 · 곡산 · 통천 • 옥-구 • 성천 · 양 232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