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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통행인들에게뜩립선언서를나누어주며탑골공원에도착하여팔각정을둘러 싸고집결했다. 이 대열속에는소설 『상록수』의 작가심훈도있었다.16) 탑골공원을 빠져니온군중은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시가행진을 했다. 서쪽 으로 향한 대열의 제1대는 서울역에서 통의동 • 정동 · 미국 영사관 • 이화학 당 · 광화문 앞 · 서대문 • 소공동 · 충무로로 · 다른 1대는 무교동, 대한문으 로, 동쪽으로 호f한 시위대는 창덕궁 · 안국동 • 광화문 • 서대문 · 대한문 • 충 무로 · 동대문 방면으로 행진했다. 서울 장안이 옹통 만세소리로 진동하였다. 통쪽으로 향한 다른 시위대는 창덕궁 앞 • 안국동 • 광화문않 • 서대문 · 프 랑스 영사관에 이르러 일부는 미국 영사관 · 대한문 앞 · 소공동 · 충무로(본 정)을거쳐 종로통 • 동아연초회사 • 동대문으로향했다 덕수궁 대한문 광장과 서울시내 시위 그날 덕수궁 대한문 앞 광장에는 이틀 앞으로 다가온 광무황체의 국장을 앞 두고 애도하는각또의 유생들이 엎드려곡하는것을많은남녀노소가운집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파고다공원의 시위대열에 앞서 검은제복을 엽은학생들이 2, 3인씩 조를지어 먼저 달려오더니 군중들속으로흩어져 들어가 모자를 벗어 들 고 열변을 토했다. 학생들을 에워싸고 있던 군중이 독립만세를 소리 높이 외치 자금방 군중 전체에 전파되어 만세소리가 대한문 광장을 뒤흔들었다. 17) 상인 들은점포를철시하고거리로뛰쳐나왔고,전황제의국장을구경하러시골에서 상경한유생들과 평안 도수건을쓴부녀자들,국상중이라흰 갓을 쓴노인들, 남 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만세시위에 가담하여 몇 십만의 인파가 서울 거리마다 넘쳐났다. 대열은동서남북으로나뉘어 각국 영사관, 일제 주요 기관퉁을 누비 며 나이갔다. 행렬은 꼬리를 물었고, 각 대열마다 한 번씩은 덕수궁 정문 앞에 당도해 대한문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가서 황제의 빈전을 향해 잡揚하고 물러갔 다. 해가 질 때까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18) 16) 『경기고퉁학교 90년사」, 경기고둥학교동창회, 1990, 128∼129쪽 17) 윤백남, 3 . 1운동발발당일의 인상」 , r신천지』 J-2, 1946, 118∼l19쪽. 18) 최은희, 앞의 책, 18쪽 226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