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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글공원의필각정 니 미음이 초조하기는 모두 마 찬가지였다. 나 도 두리번거리 며 학생대표 김원벽 군을 찾았 으나그도눈에 띄지 않았다. 내 짐작으로는군중들이 다모이면 우선 민족대표들이 나와독립을 선언하고시위행진을하든지 다 른 중대한 행동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도무지 그런 낌새가 없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러다가는 모처 럼의 거사가실패로돌아가지 않을까하여 어린마음에도걱정이 되었다- -‘나는(친귀 이경화와함께 태호 }관 으로달려갔다. 태화관에 민족대표들이 모여 있다는말활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무엇을하고있는것일까. 왜 대 중들앞에 나서지않는것일까 그들이회의를하고있는줄알았지만이처럼 길 어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하였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태회관에 이르고 보니 형 사 들이 태화관입구를에워싸고출입을금하고있었다. 하는수없이 다시 파고 다·공원으로돌아오면서 나는우리 학생들끼리라도거사하는수밖에 없다고생 각하였다. “그런데우리가공원 뒷문 안에 들어서니군중속에서 누군가가선언서 낭독 을 끝마친 참이었다. 학생복을 입지 않은 것을 보니 학생대표는 아닌 모양이었 다. 낭독이 끝나차누구의 선창인지 --조선독립 만세“ 소리가군중들속에서 일 어났다. 연달아 “만세-- “만세-- 외치는군중들의 소리는포효로변하였다 공 원은 일시에 흥분의 도가니로 화했다. ” 15) 3월 1일 아침, 정재용은 민족대표인 박희도로부터 선언서 발표 장소가 변경 됐다는 말을들었다. 정재용은서울 경신학교 출신으로고향해주의 의창찮옵여 학교교감으로있었다 3 · 1운동직전같은 해주출신 YMCA 학생간사 박희도 의 연락을 받고서울에 와서 3월 1일 학생 동원을 책임졌다. 그는일경들 의 감시 1'5) 정석해, 「남대문역두의 독립만세」, r신동아 』 1969. 3. 214-215쪽 224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