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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운 • 장인환 의사에 의해 처I닫된 친일고문스티븐스 권총을 꺼내 발사했지만불발되고 말았다. 당황 한 전명운이 권총자루로 스티븐스의 면상을 강 타하고 달아나자 스티븐스는 이마에 피를 흘리 면서 전명운을 호 t해 추격하였다. 이어 장인환이 스티븐스를 향해 권총 3발을 발사하였는데, 제1 발은 전명운의 어깨부분에, 제2발은 스티븐스의 오른편 어깨뼈에, 제3발은 복부를 명중하였다. 장인환의사의 총격에 쓰러진 스티븐스는 이틀 뒤인 3월 25일 사망했다. 전명운 · 장인환의사가 재판에 회부되자 국내외에 걸쳐 재판후원회가 결성되어, 의연금을 모금하는 힌편 무죄판결운 동을전개하였다 . 일본측은제일급살인범이라 주장하며 사형을 요구했으나 1908년 12월 23일 2급 살인죄로 25년간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장인환은 모범수로 복역했으며 1919년에 기출옥하였다 한편 전 명운의사는 1908년 6월에무죄석방되어 연해주로가재러한인사회에서 활약 하다가 1909년 7월에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안중근 의사는끓의를보고 참지 못하는의협심의 사나이였다. 1907년 이전에 는교육운동과국채보상운동퉁애국계몽운동에 적극침여하다팡무황제가강제 퇴위, 군대 깅체해산퉁밍국상태를보자울분을품고 연해주로건너가의병운동 에 뛰어들었다. 안중근은 1908년 1월 연해주의병에서특피독립대장겸 아령지구 군사령관으로임명되어국내진공작전을감행하고전과를올렸다그러나포로로 잡은일본군을제네바협정에의거, 주변에반대에도불구하고석방했으나이들이 다시 안중근부대를 기습공격하여 전부대원을 잃는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 . 1909년 3월 2일 동지 12명과 함께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할 것을 손가락 마디 를 잘라 피로써 맹서하며 단지회(단지동맹)를 조직했다. 이토 히로부미伊腦뺨文 가 러시아대장대신인 코코프체프와회견하기 위해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소식 152 고양독립운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