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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노령지역 의병운동과고양출신 이범윤 이범윤 李範允은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을 추서받은 고양사람이 다 ,1856년이경하 추景夏의 아들로태어난그는두만강넘어간도지역에 이주한 조선 농민 6,7만 명을 청국의 박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1900년에 북변간도관 리사北邊問닮管理使푼 임명되었다. 1902년6월 이범윤은간도에사포대私꽤隊 또 는관리병쯤행兵을조직하여동포들을보호하였다. 그후러일전쟁이 일어나전 선이 만주로까지 펼쳐지자 이범윤은 러시아군을 지원하며 일본군을 공격하였 다 그러나 러시아는 일본에 패배했다. 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 되자, 일본은 대한제국에서 파경한 외교관과 관리들을 불러들였다. 이 때 이범윤은 귀환을 거부하고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 1907년에는 일본은간도의 한인을보호한다는 명분으로통감부 암시간도파 출소를 설치했다. 1908년을 전후하여 국내에서 일본군의 탄압에 밀려 북장하던 의병부대들이 함경북도와 연해주로 이통하였다. 이범윤은 연해주에서 창의회월 ~~양會를 조직 하고 의병부대를 펀성하여 청년들을 무장시켰다. 이범윤의 연해주 의병은 1908년 4월부터 국내 진공작전을 본격적으로 시작 했다. 9 월 23일에는 두만강 대안의 경홍, 10월 17일에는 길주힘·M 동남방 화대 리花쭉里에서 의병 50명이 성진城밟의 수비대와 교전했으며, 10펄 15일에는 약 50명의 의병이 경성뚫城주재 일군헌병 및 경찰대와교전을하였다. 연해주에서이범윤의병부대의국내진공활동은일본군을크 게당황하게하 였다. 일본은 두만강 • 압록강 일대에 국경경비 병력을 강화히속는 한편 외무성 을 통해 러시아 딩국에 한국 의병의 무장 해제와 체포 ·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 였다. 그러나이 시기까지 러시아딩국은 러일전쟁의 패배로인한일본군에 대 한적대적 태도를가지고있었기에한국인에대해관용적이었다. 러시아 t:J 국 의 호의로 이범윤 꾀병 부대는 그 후에도 국내 침공작전을 계속할 수 있었다, 1909년에 들어와서도 대대적인 국내 침투를 기획하였다. 이범윤은 노령 각지 의 애국유지들로부터 군자금을모집하는한편, 러 • 일전쟁 퇴역 장교들이 갖 고 있던 총기를구입하는 한편 군자금도마련하였다. 제복도 러시아식 군복 차 림으로통일하고추위를이길수있도록털모자도썼다.또그들은러시아퇴역 제2편 | 국권회복운동 1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