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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혜 산파 터 박자혜(朴慈惠 1895~1943)가 산파를 개원한 곳이다. 박자혜는 3.1운동때 간호사들의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중국으로 망명한 후 단재 신채로선생과 결혼했다. 서울로 돌아와 산파로 활동하며 나석주열사의 의거(1926년)를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쳤다. 2020년 8월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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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박자혜 간호사 박자혜 간호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동료 간호사와 조산사들을 규합해 ‘간우회’를 조직하고, 독립만세운동 동참을 주도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의 심장부인 조선총독부의원에서 간호사들이 주도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한 점과 그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일제에 맞서 파업과 태업을 조직적으로 주동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간우회 사건으로 일경의 혹독한 취조를 받은 박자혜 간호사는 풀려난 후 만주로 건너갔다. 혁명가의 피가 끓는 여걸 박자혜 간호사는 단재 신채호 선생과 결혼해 아내이자 동지로서 독립운동을 함께 했다. 서울에 돌아와 인사동 69번지에서 ‘산파 박자혜’ 간판을 내걸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독립투사들을 안내하고 연락을 취하는 임무를 맡아 수행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식산은행 파괴 임무를 띠고 잠입한 의열단원 나석주 의사를 도왔다. 박자혜 간호사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2008년 청원군 단재 선생의 묘소에 박자혜 선생의 위패를 함께 안치함으로써 부부는 합장됐다. 출처 : 간호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