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page


173page

눈부신 활약으로 전개되었다. 뒤이어 단기 4281년 3월에 대동청년단 주산면단부가 결성되자 동지는 부단장 겸 선전과장의 중책을 지고 어느때나 험궂은 길을 앞서서 나갔으며 대한청년단 주산면단부가 단기 4282년 9월에 결성됨에 따라 단장으로 선임되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울 청년들을 이끌고 나갈때에 비내리고 눈보라치는 밤과 낮을 가림없이 그의 길은 항상 바쁘기만 하였다. 앞서 단기4281년에 나라는 섰으나 아직 통일을 못이루더니 이 무렵에 야수같은 공산역도는 피비린 민족상쟁의 6.25변란을 일으켰다. 적화의 파급이 급기야 이 지방을 더럽히자 동지는 이미 죽기를 결단하고 홀로 잠행하며 침요한 적구를 무찔러 국토회복을 기도한 선정공작을 단행하던 도중에서 잡혀 혹독한 악형에도 굽힘없이 충의 늠렬한지라 기어이 매국적도 흉탄에 장렬한 최후를 마치니 춘추 29였다. '대한민국의 승리와 민족의 통일 나는 믿는다' 등지의 이 마지막 절규는 말이 아니라 혈관을 터져나온 붉은 피의 함성이었다. 동지는 비록 한지방에 있어 그 생애를 다하였으나 제 고장을 지킴은 제나라를 지킴이리니 도이의 충성된 마음아는 이 누가 애국의 열사라 아니하리요 동지의 흘린 피 마르기도전에 원수는 패망하였으나 흩어져 남은 공산역도는 지금 마지막 고비에서 날뛰는지라 아직 이 땅에서 싸움은 그치지 않고있다. 이때에 동지 뒤따르던 청년들이 동지의 유지를 받들어 매국적도를 섬멸하고 조국통일을 전취할 결의를 표시하고자 하여 아울러 동지 추모하는 정성을 펴고자 하여 여기에 동지의 비를 삼가 세우는 바이다. 동지의 성은 강씨요 이름은 영석이요 본관은 진주이다. 이제 동지 사라진뒤 그 모습 다시 찾을 길없으나 씩씩한 기백은 천추만대 이 땅의 등불이 되리라. 지난이는 여기에 머물러 동지를 추모하라.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영광을 위해 피를 뿌린 강영석 동지의 생장한 마을이 저 산기슭에 있다. 강영석 동지 추모회 회장 박종연 외 일동 조완묵 짓고 차동일 쓰다. 단기 4284년 월 일에 삼가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