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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군 갈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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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목숨을 아낄줄 모르리오마는 나라의 존망이 앞에 있을때 렬사는 나라만을 안다. 지금투버 육십칠년전 고종 계미 팔월이십구일 서울서 화를 당한 백추강선생이 그러한 분의 하나다. 앞서 갑술년에 중궁본곁들이 대원군의 세도를 돌리어 놓고 오히려 뒤일을 염려하야 마침내 왜인까지 당기었다. 강화조약뒤로 조신가운데 장래를 걱정한 이 없지아니하였으나 바로 임검께 다토는이 없더니 선생의 상소가 나자 모두 놀랐다. 선생은 이미 죽기를 결단한지라 적을 끌어안을 방비코저 마소서 얼마나 아니하야 나라를 달랄것이니 그때는 전하 전후 좌우가 다 적의 사람이라 누구로 더부러 직히려시오 하는 그 말이 말이아니라 피었다 즉시 의금부에 가치없더니 임오군변이 나며 군사들이 우리 충신을 뵈옵자하고 옥문을 깨치고 선생을 떠메어 나오는것을 선생이 꾸짖고 그 여히 옥으로 도라갔다. 이때 대원군이 잠간 정권을 갖어 선생이 놓이었으나 벼슬로 부르랴하는 것을 굳이 거절하얐다. 몇달뒤 다시 잡혀 제주에 위리하얐다. 또 서울로 올리어 그 여히 참혹한 최후를 마추니 춘추 삼십팔이다. 선생이 남포 집에서 잡혀 올라올때 그 어루신 네 참판과 부자 결병하는 마당에 시시밀ㅇ; 없이 오즉 충의 늠렬하야 금부도사로 갔던 이가 말하기를 이번 길에 두 충신을 보았다고 하얐다 한다. 예나 이제 나라가 있고서야 내가 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하야 죽는 이는 드물다. 하물며 죽어서 아무 유익조차 없을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나라 기우는 것을 참아보고 있지 못하야 딘연히 일어선 선생같은 분이야 말로 민족정신으로 보아 일월 보담도 더 빛나다. 선생 도라간지 이십팔년에 이 땅이 적의 손에 들어 삼십륙년을 지니다가 적이 물러간뒤 사년만에 우리나라가 서니 그 이듬해가 곧 올이다. 팔월을 앞두고 모다 선생 추모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