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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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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1920.8.2~1993.8.30) 애족장(1990)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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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 선생은 1920년 8월 2일 고정리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1041년 1월, 대구사범학교 재학당시 동교생 임굉, 이태길, 최낙철등과 함께 당시 대구 동운동 소재 이무영의 집에 모여 항일학생결사 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연구회는 조국독립을 위한 실력배양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한 단체로서, 회원들은 당시 국제정세를 분석하여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다가온 독립에 대비하기위해 실력을 양성해서 독립 후 각기 전문분야의 최고권위자가 될 것을 다짐했다. 이들은 학술연구를 표방하면서 항일의식을 고양했으며, 회의 운영을 위해 비밀엄수, 매월 10일 연구발표와 하급생지도 및 동지포섭 등의 방침을 정하였다. 또한 각 부서를 정했는데 이 때 선생은 이과부 책임겸 사무원의 일을 맡았다. 연구회는 1041년 2월부터 동년 3월까지 여섯차례의 모임을 갖고 활동및 결의사항을 추진하였다. 선생은 1941년 3월에 동교 졸업후 충남 예산군 소재 신암공립보통학교에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앙양시키며 연구회의 사업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반딧불>이 일경의 손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선생을 포함한 대구사범학교 관련자 37명이 일경에 붙잡혔으며, 선생은 그 후 미결수로 2년여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1043년 11월에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5년 2월 6일 만기 출옥한 선생은 광복후 고향인 밀양에서 교직에 나아가 후학을 양성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