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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고창하고는 명분을 세워 길안면장과 면서기도 함께 만세를 부르게 하고자 면사무소로 갔다. 미리 와 있던 스키모토순사가 시위대를 저지하자, 350여 군중들은 오후 6시경 면사무소에 투석하여 유리창과 출입문을 파괴하였다. 다시 길안주재소로 몰려가서 유리창과 기물을 파괴하였지만 일본 경찰의 발포 때문에 해산을 하였다. 이때 시위를 전후하여 손두원 김필락 지사는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손영학 김정익 김정연은 의거 후 피신하여 상하이 임시정부로 가기 위해 준비하다가 의성의 박재하 집에서 1920년 9월 체포되어 징역 5년형을, 정성흠 김술병은 징역 1년형과 벌금 50원을, 김재락 권우철 권영직 정유복 장두회는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그 이후 역대 교역자는 윤영문 권중한 이광호 이상동 백보동 조사 권수백 민태규 최원수 이수덕 정의지 김성규 김병하 강진홍 이두일 김정목이 수덕 전도사,이주한 장로, 이원태 권태호 김문병 전도사, 박종석 목사, 강달규 염삼손 강도사, 김기호 권영채 권영성 권수헌 오성회 박창권 김도한 김덕진 김원섭 전도사, 강창규 신재원 목사, 김호진 교육전도사, 권영소정 연목사 등이 목회대를 이어가며 시무를 하면서 교회를 부흥시켰다. 1931년에는 건축기성회를 조직하고 초가 10칸 예배당을 6칸으로 줄이고 기와를 덮고나서 일제 말엽까지 신앙박해를 이기고 어려운 가운데서 지내었다. 1935년 6월에 장립한 정승교 초대장로는 일제의 간악한 계교에 의하여 징용으로 붙들려갔고, 교회는 김용윤 정승덕 두영수가 이끌어갔다. 1945년 10월에는 반주 용풍금을 구입하여 예배를 드리니 광복의 기쁨과 함께 새로운 활기가 넘쳤다. 한국전쟁으로 오대에 점령한 공산세력에 의하여 정승교장로는 인민재판에 회부되었다. 1951년 4월에 교회부지로 60평을 매입하고 휴전 후 교회가 부흥이 되어 1954년 가을에는 새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다시 1956년에는 부지 69평을 매입하고 1961년 11월에는 제2차 성전 봉헌을 하고 초가 3칸을 매입하였다. 1964년 5월에는 박종석 목사의주선으로 중등구락부를 개교하고 학생 40여명을 입학시켜 전도를 위한 중학과정을 교육시켰다. 1978년 11월에 다시 김우득 장로로 건축위원장을 임명하고 성전봉헌을 하니 제3차 예배당이다. 1994년 9월에 구교육관 해체와 신교육관 기공예배를 드리니 교회로서의 면모가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