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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의 지원 활약 F51D '무스탕' 전투기 - 길이 9.8m/높이 4.2m/폭 11.3m/최대속도 770㎞/항속거리 3.538㎞ - 제작사 미국 노스 아메리칸 - 1957년 6월 29일 퇴역 - 통영 상륙작전 시 3대 투입 무스탕이라 불리우는 이 항공기는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2일 한국군 최초의 전투기로 도입된다. 1953년 휴전 대(7.27)까지 지상군 황공지원 작전을 위해 총 8,495회 출격, 당시 이 전투기는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고 하여 "신념의 조인"이라고 불린다. F-51D는 미국 North American(노스 아메리칸)사에서 개발한 프로펠러 전투기로, 1942년 최초로 비행을 하였으며, 제2차 셰계대전 중 많은 활약을 하였다. 한국 공군은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2일 미군으로부터 F-51D 10대를 인수하였으며, 동년 7월 3일 대구기지에서 첫 출격을 개시하였다. 1950년 8월 통영 상륙작전 시에도 죽림 근처 바위굴에 은신하고 있던 인민군을 소탕할 때 F-51 편대가 수십 차례 굴 입구와 적 교통로에 폭격과 기총소사를 가하는 등 제공권을 장학하고 지원하였으며 전쟁 기간 중 미군으로부터 총 130여 대를 인수하여 약 8,500여 회의 전투 출격 임무를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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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상륙작전의 주역 1중대장 대위 : 한예택 / 2중대장 대위 : 김광식 / 지원중대 대위 : 김석근 김종식(수색소대장) : 김종식 해병 대령은 1926년 1월 중국 하얼빈에서 출생, 하얼빈 대도관 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수학, 1949년 2월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선발되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자 낙동강 지역 진동리 지구 전투 및 한국 해병대가 수행한 통영 상륙작전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인천 상륙작전에도 참전하여 서울 탈환의 최선봉으로 활약했다. 1952년 3월 수도 서울의 관문인 장단지구를 지키는 해병대 전투단 1대 대장으로서 대원들을 삭발시켜 비장한 결의로 중공군과 결전을 벌여 큰 공을 세웠으며, 전선으로 출동하기 전 묘지에 「故 海軍 少領 金種植 之墓(고 해군 소령 김종식 지묘)」라고 쓴 팻말을 꽂아놓고 출전하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휴전 이후 해병대 1 연대장, 헌병감을 역임하였으며 1991년 4월 30일 타계하였다. 이봉출(3중대장) : 경남 함안 출신(1925년생)으로 48년 9월 해사 특교대(1차)를 수료하고 소위로 임관, 해군 부산 헌병대장을 역임한 후 해병대로 전입했던 이봉출 중위는 6.25 전쟁 초기 고길훈 부대의 3중 댖ㅇ로 임명되어 장항 군산 이리지구 전투에 참가한 데 이어 진동리, 통영지구 전투를 거쳐 인천 상륙작전과 수도 탈환 작전에도 참가했다. 안창관(7중대장) : 평남 평원에서 독립운동가 안용운 선생의 막내로 태어난 안창관 대령은 1949년 4월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6.25 전쟁 때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다. 특히 전쟁 중 낙동강 전선이 위태로울 때 김성은 부대의 7중 대장으로서 마산으로 향하는 적 정찰대대를 진동리에서 기습공격, 대파함으로써 전 부대원이 일계급 특진하는 전례를 남겼다. 그는 또 통영 상륙작전에 7중 대장으로 참여하여 활약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