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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상륙작전 / 체험담 - 이 체험담은 2006년 향토 역사 자료조사 시 보조금 결과물입니다. 시간이나 날짜, 발음상의 표기내용이 체험하신 분들의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기록된 내용이므로 다소 차이가 있음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발췌 : 통영상륙작전 총정리/통영시 연구회 ▶정갑섭(68세) 도남동 410-1 청솔APT 102-503(2006년) 8월 15일 10:00 광복절 기념식(충렬초교 교정) 참석. "통영에서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또 충렬사가 있기 때문에 폭격도 없다." (최천도경국장) 8월 16일 21:00 뚝지먼당 쪽에서 안뒷산 쪽으로 사격하는 듯 무수한 예광탄의 줄기가 우리집(문화동 249) 지붕 위로 흘러갔다. 우리 식구는 때 아닌 이불을 뒤집어 쓰고 어찌할 줄 몰랐다. 8월 16일 22:00 예탄광이 금방이라도 지붕에 맞을 것 같아 6가족이 대충 짐을 꾸려 사돈집(명정동 새동네)으로 피하기로 하고 서문고개로 갔더니 방위병이 길을 막고는 걱정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기에 할 수 없이 피하기로 하고 서문고개로 갔더니 방위병이 길을 막고는 걱정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기에 할 수 없이 돌아와서 아랫방에다 이불을 펴놓고 전 가족이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8월 16일 24:00 경찰서 족에서 콩 볶듯 하는 총성이 1분 이상 계속되더니 10여명으로 여겨지는 남녀의 비명이 1~2분 계속되었다가 잠잠해졌다. 전진방어선 : 광도면 현 한산식당 부근, 인민군은 한산식당 뒤쪽으로 참호를 팠다. 광도지서 앞, 안정입구의 산에서 1개월 근무. 워눈고개방위선 : 인민군의 차량통행을 방해하기 위하여 원문고개 길에 구덩이를 파고 현 강남병원쪽으로 참호를 폈다. 후퇴 : 7월 17일 경찰과 방위군은 원문에 집결하였다가 밤 12시 걸어서 시내 쪽으로 와서 배를 타고 한산 비진도로 후퇴. 대원의 배치 : 김상국(본부중대장) 용남면 주재, 박낙구는 미륵도 주재하다가 모두 비진도로 철수. 해병대상륙작전 때 첩보활동, 양동작전 등 협공작전은 없었다. 해상방위대 : 대장은 하채원, 학도로 군군 2명(안대홍, 박상협) 강득윤, 공학수배. ▶조경례(78세) 진주시 상대동 461-3(2006년) 나는 당시 해군 일등 수병으로 소해정 512호의 기관실에서 근무했다. (군번 8111778) 6.25사변 발발 후 서해, 남해 등지에서 초계활동을 하다가 8월 초순 진동전투지원, 진해 복귀, 통영상륙작전에 참가했다. 기관실에서 근무했으므로 자세한 정황은 잘 모른다. 소해정 512호에 해병대 김성은 부대원을 태우고 진해에서 통영읍 동북방 1㎞ 지점인 지도에... 나는 상륙작전 당일(8월 18일) 하루 동안 통영의 여황산 쪽에 기관포를 발사한 것으로 기억한다. 함정에 대한 인민군들의 대응 사격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해군들 사상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