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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상륙작전 / 체험담 - 이 체험담은 2006년 향토 역사 자료조사 시 보조금 결과물입니다. 시간이나 날짜, 발음상의 표기내용이 체험하신 분들의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기록된 내용이므로 다소 차이가 있음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발췌 : 통영상륙작전 총정리/통영시 연구회 ▶김영일(76세) 평림1동(2006년) : 8월 18일 낮 함포사격소리를 듣고 구경하러 조카와 둘이 큰개 뒷산에 올라가 보니 공주섬 바깥에 군함이 떠 있었다. 산에는 우리 둘 밖에 없었는데 좀 있다가 우리가 서 있던 아래에 포탄이 1발 떨어졌다. 혼비백산한 우리는 능선을 타고 큰개 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그때가 오후 2시나 되었는데 갈색군복을 입은 인민군들이 큰개 고개 아래 넙덕바위쪽으로 밝갛게 내려와서 아랫 모실로 가는게 보였다.(약 200명) 그렇게 한참 보다가 집에 갔더니 무슨 정보를 받았는지 군함 1척이 망자섬 앞까지 와서 도산면(따개 앞대기)으로 건너가는 인민군들에게 사격을 가했다. 얼마 후 인민군들이 응사하자 군함이 물러 나와 부우섬 쪽으로 가서 도산면 개 안쪽을 보고 사격했다. 인민군들은 굴속에 숨어 있다가 어두워진 후 뗏목을 만들어 총과 옷을 싣고 헤엄쳐 용호리 쪽으로 건너갔다. 그때 동네 큰 배들은 거제방면으로 갔거나 작은 배는 밑창을 뚫어 물에 가라 앉혔는데 우릿개에 배(소형 노 젓는 배) 2척은 동산 우묵한 곳에 올려놓고 보릿대로 덮어 위장해 놓았다가 인민군에게 발견되어 우릿개에 들어온 인민군 10여명은 이 배로 건너갔다. 훈날 이 배 주인들은 다 처벌 받았다. - 당시 패잔병 200여명은 큰개로 넘어와서 10여명은 우릿개로, 대부분은 큰물개로 갔다. - 통영 탈환 이후 원문공방전 。해병대는 전하도(장평리)에서 원문으로 와서 지금 전적 공원 쪽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인민군은 도산면 용호리의 따개산 일대에 참호를 파고(교통로 상당길이) 저항했는데 왜정 때의 금굴은 그들의 본부였다. 。동네 청년들로 자위대 비슷한 것을 조직해서 매일 밤낮으로 용호동이 건너가 보이는 큰개, 작은개, 우릿개 쪽 해안을 보초 경계했다. 상단기간 전투가 벌어졌고 인민군 금굴에 아군기의 공습도 여러 차례 있었다. ▶김덕갑(70세) 용남면 장문리 대안마을 357(2006년) 장용균 용남면 동달리 오촌 389. 거제도로 피난갔다가 집에 오고 싶어서 견내량에서 헤엄을 쳐 간섬으로 해서 오촌집에 오기도 했다. 거제에서 여러 명(6~7명)의 인민군을 보았다. 나중 해병대가 원문고개에 방어선을 치고 밤마다 하늘에 불이 나르는 것을 보았다. 용남초등학교가 해병대 본부였다. 장문 대안마을 집에서 원문 금굴에 폭격이나 함포사격을 많이 보았지만 사상자는 보지 못했다. 해병대는 진지에 자주 놀러갔는데 거의 제주도 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