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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상륙작전 / 체험담 - 이 체험담은 2006년 향토 역사 자료조사 시 보조금 결과물입니다. 시간이나 날짜, 발음상의 표기내용이 체험하신 분들의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기록된 내용이므로 다소 차이가 있음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발췌 : 통영상륙작전 총정리/통영시 연구회 ▶문세윤(69세) 서호동 163-43(2006년) : 6.25 당시 나는 충렬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우리 식구들은 피난을 간다는 것이 거꾸로 광도면 용로리 좌진포로 갔다. 8월 19일 기억된다. 그날 오후부터 많은 인민군들이 목 아래는 모두 젖은 모습으로 용호리 일대에 나타났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건너편 큰개, 작은개 방면에서 작은 목선이나 뗏목에 무기와 탄약을 싣고 배를 붙들고 헤엄을 쳐 건너왔다는 것이었다. 밤에도 그들은 젖은 모습으로 계속 왔는데 그들은 동네 사람들을 시켜 밥을 지어 먹고 대게 도산면 사무소 쪽으로 간 것 같다. 그 뒤 죽림쪽에서 비행기의 톡격과 기총소사 소리가 매일 들리니 불안해서 8월 26일 전후해서 수월리 양지개 마을로 갔다. 도산초등학교를 지나면서 보니 학교가 인민군 본부가 돼 있었다. 싸이드카(소련제)가 여더 대 있고 교사는 부대본부인 듯 했다. 당시 학교는 지붕에 학교 표시가 되어 있어 공습에서 면제되었다. 그러니까 그들 인민군은 낮에는 학교 교사에 들어가 쉬고 밤에 움직였다. 사람들은 죽림에서 싸우는 인민군 부대의 본부라고 했다. 수월리 향지개 어느 집에 두번째 피난보따리를 풀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엔가 해병대 1개 분대가 어선을 타고 와서 양지개에 상륙했다. 그들은 대부분 다발총으로 무장했고 경기라고 하는 총신이 긴 기관총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시켜 도산면 사무소 쪽의 적정을 탐색시키고 인근을 수색하다가 오후에는 인민군과 총격전을 벌였다. 해병대 수색조가 어선을 타고 후퇴한 뒤 날마다 해병대가 어선을 타고 접근하여 기총소사를 가하고는 물러나고 하기를 1주일 가량 계속했다. 한편 인민군은 수월고개 산능선에 교통호를 구축하고 해병대와 싸웠으나 사상자는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민군들은 높은 사람이 순시 온다며 준비를 제법 하는 듯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가 9월 20일 무렵이었다. ▶임채연(69세) 광도면 죽림리 132-19(2006년) : 죽림1구 양지마을 뒷산 표고 100m도 채 안 되는 곳에 동 서로 약 40m 상거에 바위굴이 3개 있는데 총 길이를 합치면 100m가 넘을 것이다. 굴의 높이는 약 2m 여기에 인민군이 진을 치고 워눈고개 해병대와 대치했는데 음력 7월 7일부터 8월 31일까지 1달 7일동안 싸우다가 13일 새벽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낮에는 비행기 폭격이나 함정의 함포사격 때문에 굴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나와서 여러 차례 해병대 진지를 습격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양지마을 뒷산 광산에서는 '다이어스포어'라는 광석을 캐서 일본으로 수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