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page


384page

조선인학살피해자 추도비(사이타마) 조선인 강대흥 묘 1923년 9월 4일 오전 3시경, 경계 중이던 소메야무라 자경단은 피난 온 강대흥을 발견하고 '불령선인을 퇴치하면 훈장을 받는다'는 소문을 믿고 경종을 울리며 추격하였다. 지식인의 만류에도 창과 일본도를 든 우에몬(右衛門), 구마모토(熊五郞), 가쿠조(角蔵), 가시조(橿蔵), 세이키치(淸吉)들은 필사적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강대흥에게 가차없이 달려들어 빈사 지경의 중상을 입혔다. 그 후 강대흥은 다른 마을 주민에게 구조되나 때가 늦어 너무 늦어 숨이 끊어지고 만다. 사건을 반성하며 마을 주민은 조센사에 묘를 세웠고, 2001년 12월에 새로운 바람을 맹세하며 개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훗날 피해자의 유족(손자)이 본국에서 발견되었다. 2015년 9월, 오충공 감독이 합동 법요를 청하였으나 이루지 못했다.
384page

비문 내용 ▶ 정면 고묘(古墓)정면- 조선인 강대흥 묘 ▶ 좌측면 다이쇼 12년(1923) 9월 4일 공조노여환선정문위(空朝露如幻禪定門位) 관동대진재 때 이곳에서 사망 시주 소메야 일반 ▶ 개장 비문 정면 추도 / 관동대진재 / 홀연실명난(忽然失命難) / 위수난정령(爲受難精靈) 근향화등촉(謹香華燈燭) / 공이신공양(供以伸供養) 헤이세이 13년(2001) 12월 길일 / 당산 제30대 대영원일(大英元一) 합장 소재지 | 사이타마시 미누마구 소메야 조선사(常泉寺) 건립일 | 2001년 12월 건립자 | 소메야구 주민 크기 | 비-세로 213cm, 가로 13cm, 폭 16.6cm 대좌 | 세로 82cm 가로 243cm 폭 67.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