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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문 19세기 말 일제의 조선 침탈이 시작되고 1907년 군대마저 강제해산되면서 관인면의 보개산과 한탄강 용담금광 등은 정미의병 무장항쟁의 중심지로 일본군에 맞선 수많은 전투에서 의병들은 처절하게 희생됐다. 당시 관인면 초과리 남창동에서 돌절구를 만들던 진성교(秦成敎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는 33세에 구국일념으로 분연히 일어나 의병항쟁에 가담하였다가 체포되어 10년형으로 투옥돼 희생된 독립운동가이다. 그리고 100년 전인 1919년 3월 1일 세계만방에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한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날 때 관인면 삼율리 거주 19세의 기독교 청년 조아당(趙亞當)과 청년 박용길(朴龍吉)의 주도로 격문이 배포되고 4월 10일 면민 대다수가 참여하는 대규모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상노리 신포동에서 시작한 그 날의 만세운동 행렬이 밤나무골-다랑고개-사정리를 거쳐 14㎞를 행진하여 진성교의 마을인 남창동으로 600여 명이 진입하자 일본군 중리헌병 분견대 등에 의해 평화적인 시위가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이 항쟁의 결과로 31명이 잔혹하게 검거되었고 조아당은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형의 시련 속에서도 저항을 계속하다가 희생되었다. 100년 전 인류 보편의 가치로 일제의 폭압과 무력에 맞서 면민 모두가 떨쳐 일어나 평화적으로 항거한 우리 고장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선열들의 고귀한 자주독립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영원히 계승하기 위하여 면민 모두의 정성을 모아 이 비를 세운다. 2019년 4월 10일 관인면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관인면민 일동 삼가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