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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휴전회담제의 및 휴전협정 조인 - 휴전협정에 서명하는 UN군 총사령관 클라크장군 이승만은 1951년 6월 9일 휴전의 결사반대를 선언하였고 6월 27일 소련의 휴전안을 거부하였다. 1951년 7월에 휴전회담이 개시된 후 세계전쟁 사상 처음보는 제한 전쟁이 벌어졌다. 1951년 9월 20일 이승만은 휴전 수락의 전제조건으로 중국 인민지원군 철수, 북한 무장해제, 국제 연합 감시하에 총선거를 요청하였다. 군사분계선 문제는 이미 1952년 1월 27일에 타결되었으며, 1952년 5월에 이르러선 포로교환 문제를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 의제에 합의하였다. 주로 개성과 금강산에 이르는 곳에서 전투가 계속되다가 북한이 소련을 통해 휴전을 제의하였고, 유엔군 측의 승인으로 휴전이 성립되었다. 당시 UN군 총사령관 클라크.북한군 총사령관 김일성.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평더화이가 서명했다. 1953년 7월 27일에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3년 1개월 만에 한국 전쟁은 휴전으로 매듭이 지어졌으며, 현재까지 그 효력이 이어지고 있다. 휴전협정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휴전협정 4조 60항은 협정 체결 후 3개월 안에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위급 관계국 정치회의를 개최할 것을 쌍방 정부에 건의했다. 그 직후인 1953년 8월 28일 제7차 국제 연합 총회는 결의 711호를 통해 휴전협정을 인준하고, 협정 4조 60항이 건의한 대로 한반도 통일을 위한 정치회의가 개최되는 것을 환영한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