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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알았다 그 손님들을 찬바람 서릿길 깊은 밤이면 썩은새 감나무집 작은 봉창에 상투머리 그림자들 몇몇이던가를 구태여 손짓하며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은 알았다 아이들까지도 김도삼이 정익서 그리고 앉은뱅이 두루마기 펄럭이며 왔다가 가고 그 밤이면 개들이 짖지 않았다 개들도 죽은 듯이 짖지 않았다 장날이 되어야 얼굴이나 볼까? 평생을 서러움에 찌든 사람들 찰밥 한 줌 못 짓는 무지렁이 대보름 진눈깨비 내리는 대목장터에 큰바람이 불었다. 쇠전머리에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 되었지 때가 차고 부스럼딱지 개버짐 피었으니 가자 가자 손뼉치며 가자 김제 태인 알렸느냐? 최경선이를 불렀느냐? 지프라기 날리는 저녁 말목장터에 으스름 보름달 서럽게 밟고 낫 갈아 아비들은 참대를 찍었다 드디어 때가 찼으니 증오를 증오로 갚기 위하여 온몸에 불타는 피 아우성치며 아비들은 몰려갔다 안개 낀 새벽 해묵은 피고름 비로소 터지고 증오를 오히려 증오로 갚기 위하여 아비들은 몰려갔다 살얼음 거친 들판 꽝꽝 울리며 나무껍질 풀뿌리로 살아남아서 그 겨울 노령남북 모여든 아비 아비들은 몰려갔다 곰배팔이도 눈비바람 칼날같이 몰아칠지라도 그 누가 무단히 죽어간다더냐? 동트는 고부읍내 천둥번개로 두둥둥 북치고 꽹과리치고 온몸에 불타는 피 아우성치며 꽹과리치고 보아라 말발굽소리 크게 울리며 흰말 타고 달려오는 전봉준을 보아라 남은 처자 불쌍하여 눈 못 감고 죽은 만 사람의 붉은 피 두 손에 움켜쥐고 어이 어이 말잔등 찬바람 뚫고 한걸음에 여기 왔다 이노옴, 조병갑아 자네 손화중이 동문으로 가고 자네 김개남이 남문으로 가게 한 번 지른 함성으로 삼문이 부서지고 또 한 번 지른 함성으로 동헌 지붕이 불에 탔다 창고문을 열어라 감옥문을 부숴라 조병갑이를 놓치지 마라 갈기갈기 찢으리라 죽창이 없으면 괭이로 찍고 몽둥이가 없으면 발로 밟으리라 자네 김개남이 앞뜰로 가고 자네 손화중이 뒤뜰로 가게 앉은뱅이 이빨 물고 치는 북소리 고부산천 회오리치며 크게 울렸나니 여우 같은 조병갑이 옷 바꿔 입고 어디론가 흔적 없이 뺑소니치고 분바른 계집들 후들후들 떨며 목숨을 빌었다 맨땅에 엎드려 이제 와서 그 흙탕물 어찌 두고 보랴 원한 쌓인 만석보 삽으로 찍으며 여러 사람이 한 사람처럼 소리소리쳤다 만석보를 허물어라 만석보를 허물어라 터진 봇둑 밀치며 핏물이 흐르고 여러 사람이 한 사람처럼 얼싸안고 울었다 차라리 노래보다 몸부림으로 그 한나절 어깨춤 추고 어절씨구 곰배팔이 곰배춤 추며 어절씨구 곰패팔이 곰배춤 추며 허허 이게 참으로 몇 해 만인가? 한쪽에선 가마솥에 흰밥을 찌고 한쪽에선 만석보 허물고 온 이야기 조병갑이 허겁지겁 도망친 이야기로 모두들 오랜만에 신명이 났다 허허, 이게 참으로 몇 해 만인가? 한쪽에선 가마솥에 흰밥을 찌고 이윽고 산마루에 큰 달이 뜨니\ 해묵은 어둔 밤을 비로소 끝내기 위하여 아비들은 빼앗은 관청마당 높은 담장 밑에 날선 죽창 세워 두고 모닥불 쬐며 아이들이 부르는 청승맞은 노래를 들었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되면 못 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