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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전적지 태인전적지는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군에 맞서, 1894년 11월 27일(양 12.29)에 치열하게 접전을 벌인 곳으로 전봉준 장군이 지휘한 최후 전투지이다. 우금티 전투 이후 전봉준장군은 논산과 전주를 거쳐 원평 구미란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였고, 이곳 태인에서 재기를 위한 항전을 준비하였다. 전봉준 장군과 김문행(태인접주) 유공만 문형민 등 지휘부는 3천여 명의 동학농민군과 함께 태인의 주산인 성황산 한가산 도리산 등 3개 산 9개 봉우리에 진을 쳤다. 오전 10시부터 약 10시간에 걸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는데, 동학농민군은 40~50명이 생포당하고 30~40명이 전사하였으며, 희룡포 15정, 조총 200여 정, 다수의 탄약과 죽창, 말 6필 등을 노획당하고, 고부와 남원방면으로 퇴각하였다. 경군은 230명, 일본군은 40명이었다. 이곳 태인은 1894년 당시 태인현의 관아가 있던 중심지였으며, 동학농민군 김개남 총관령과 최경선 영솔장의 출생지이자 활동지였다. 자료 : 양호우 선봉일기, 순무사 정보첩, 봉남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