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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짜면(突馬面)의 유래(由來) | 자 어「 뺑 동 싸 한 웹 샘 65 돌마면의 유래 -한동억 돌마(突馬)라늪 말의 어원은 칠 돌(突)자 말 마(馬)자로 쓰며 말이 내 달린다는 뜻이다. 말이 내달리려면 기수(騎手)가 있어야 되는데, 옛날 이 지역은 백제시쪼(百濟始祖) 온조대왕(溫祚大王)이 하남 위례성(河南附 禮城)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에 군사들의 훈련을 시킨 지역이었다. 수정 구 칭R관동(용감洞)에 있던 세자궁(世子宮)에 거처하는 태자가 모든 병권 (兵權)을 행사하였기 때문에 세자궁을 중심으로 한강 이남인 송파(松波) 에서부터 분당구-궁내동(宮內洞)까지의 넓은벌판이 군사훈련장이었다. 특히 백제의 기마병들의 훈련장이었던 곳이라서 행정지명이 돌마면인 곳과 낙생면과 때왕면 일대에서 군사훈련을 강력하게 실시하였다. 그러 한 군사병권(軍事兵權)을 강력하게 행사하였던 태자에 대한 『삼국사기 (三國史記)』에서 언급된 기록을 살펴보면 “온조(溫祚) 28년(서기10년) 2 월에 맏아들 마루(多隻)를 태자로 삼고 중앙과 지방의 군사업무를 맡겼 다”는 기록으로 보아 백제의 군사업무를 태자가 관장하였음-을 알 수 있 다. 또 다루왕(多童王) 6년(서기33) 정월(正月)에 맏아들 기루(變隻)를 태 자로 삼고 크게 사면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근초고왕(近省古王) 24년(서 기369) 가을 구월에 고구려왕(高句麗王) 사유(斯由, 故國原王)가 보병(步 앓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