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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향토 문화총서 @ 돌마 마을지(T) 백 뒤에 방송(放送)하라는 말이 없어서 광주부에서 훈령의 지시를 살피 지못했기때푼이며,윤돌동은즉시석방케하였다.”는보고를하였던기 록이남아있다. 또 「중외일_!;!_」 1928년 2월 7일 기사에는 유금성이란 사람이 돌마면 정 자리에서 이뱀구라는사람을감언이설로꼬인후술집에 데리고들어가 서 술을 먹여 만취시킨 후 그의 주머니를 뒤져 40원을 훔쳐 달아났다가 종로경찰서에 붙잡힌사건이 보도되었다. 「조선중앙알보」에는 1934년 11월 2일 기사에 돌마면 도촌리에 사는 정 재화라는 사람이 뒷산에서 소나무에 목을 매 자살하려는 사건을 보도하 고 있는데 자살하려는 이유가 아들과 싸우던 중 이를 말리던 여자에게 뱀띨 맞고분하여 횟김에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리고 돌마면사무소에 도둑이 들어 자전거를 훔쳐 타고 돌마초등학 교창문을뜯고들어가물건들을훔쳐간사건도 있었으며 1974년 11월에 는 돌마농협 씌창살과 벽을 뚫고 들어간 도둑이 금고벽을 깨고 826만원 을털어 달아나조합장동4명이 해직되는사건도 있었다 이러한사회적 혼란상은그당시로서는전국어디에서나유사한사건들이 일어날수밖 에 없는취약한사회보장과경제수준등이 원인이었다. 돌마지역에 학교가 처음 생긴 것은 1923년 9월 중순경 유일 강습소가 생긴 것(조선일보 1923년 10월 9일 보도)이 처음이고 1927년에는 돌마변 을 이전하고자-하므로 이전반대운동이 벌어졌는데 이 운동에 필요한 비 용을 면민들에게 정수한다고 해서 일반인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던 일 들도 보도(조선일보 1927년 3월 14일자)되었다. 한편 최근에는 판교 신도시의 개발로 인하여 인구가늘어나게 되자분 당구를 분리하-여 새로운 구청이 개소될 예정인데 새로운 구명(區名) 선 정과 관련하여 갈동을 겪고 있다. 그런데 분당 신도시가 건설되던 당시 에도이런갈퉁이 있었다. 「세계일보」 1991년 1월 25일 기사에는 “기존 地名 행정구역중 일 훨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