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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향토 문화총서 & 돌마 마을지( Tl ) 실, 서예교실, 뀔트공예, 중국어, 한지공예, 수채화(중급, 초급), 기초렛 생, 문인화, 만돌린, 요가, 색소폰, 한국무용 초급, 노래교실, 기타교실, 모듬북, 강령탈춤등의 강죄를운용하고 있다. 정자1동의 시의원은홍석환 의원, 안계일 의원, 정기영 의원이며, 예비 군1동대(대장히은용)와 2동대(대장김윤섭)가있고,동유관단체로는표 3-7과같이 봉사단체로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8) 정자2동 정자2동은푼당구중심부에 위치한곳으로불곡산의 북서쪽기숨에 해 당하며 탄천이 이 지역의 서쪽을남에서 북으로흐르고 있다. 동의 북쪽 은수내동과접해 있으며 서 남 북쪽은정자1,3동및분당동에의해둘 러싸여 있다. 분당신도시 개발로 기존의 정자동 행정구역에서 정자 3동, 정자1동 퉁이 새로 생겨나면서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통의 북쪽은 백 현로에 의하여 수내1동과수내2동, 동의 남쪽에는 정자로에 의하여 정자 3동과,동의서쪽은내정로에의하여정자1동과구분되고있다. 정자동의 명칭은 이 지역이 조선 중기 이후 왕족인 전주이씨의 세거지 가 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의 아들 무산군(皮山 君)의 다섯째 아들인 태안군(泰安君) 이팽수(李향壽, 1490∼1525)의 묘 역과그자손뜰이 터를잡았으며, 태안군의 증손이 되는 이경인(李敬仁, 1575∼1642)은 이천부사 겸 광주병마진관 등을 역임하였는데, 병자호란 의 치욕을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내놓고 이곳 탄천변에 내려와 정자를 짓고 소일하였다. 그 후 그가 즐기던 ‘정자가 있는 마을’ 이란 뭇의 정자 리(흉子里)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정자리라 하였다.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고 1973년 성남시 정자동이 되었으며, 1975년 3월 돌마출장소에 편입될 당시 인근분당동 의 관할이 되었다. 1989년 5월 성남시 구제(區制)의 실시에 따라 중원구 .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