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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보(隆補)로 촬사(出{土)하여 여러 관직(官職)을 거치고 정삼품(正三 品) 당히관(堂下흙)인 통훈대부(通힘||大夫) 판사(判事)를 지냈고, 증(體) 통훈대부(通회||大夫) 사복시정(射傑놓正)에 제수되었다. 묘소는 율동 독봉산(獨峰山, 牛頭峰)에 갑좌(甲坐)이고 증(簡) 숙부인 (淑夫A) 해주(海州) 정씨(鄭民)는동원(同原) 인좌(寅坐)이다. 177 세거성씨와 인물 한동열 한홍빈(韓弘秘, 1746∼1838) 휘(譯)는 홍빈(弘#)이고 자(字)는 함숙( 含꿨)이다. 학문(學問)이 고매 (高勳)하여 정통성리학자(精通性理學者)로 많은 사람들의 귀감(龜짧)이 되어, 문학효행(文學孝行)으로 이름을 떨쳤다. 멸시봉공(滅私素公)의 자 세로 일관(一貴)하며 진충보국(盡忠報國)하여 벼슬살이 기는 곳마다 칭 송(稱煩)이 끊이치 않았고, 누차(屬次)에 걸쳐서 유림(f 需林)의 천거(薦 짧)를 받았고, 정조(표祖) 10년 을사년(ζE年)에 특보( 特補)로 통정대부 (通政大夫)로 승차(陸差)하여 경 연참찬관(經鐘參贊官)을 제수받았다. 중(體) 이조참의(更費參議)이며, 묘소는 율동(票洞) 독봉산(獨峰山) 우 두봉(牛頭峰)에 간좌(良坐)이고, 증(體) 숙부인(淑夫A) 남양(南陽) 홍씨 (洪民)는 합조부우(合%耐右)이다. 한종혁 (韓宗**, 1776∼1853) 휘( 譯)는 종혁(宗蘇)이고 자(字)는 사성(士成)이다. 부친인 홍 빈(弘#) 에게서 학문( 學問)을 훈교(訓敎)받아 학문이 탁월하고 논지(論冒)가 출 중하여 음보(陰補)로 출 사(出位)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가선대부(嘉善 大夫) 이조참판(更暫參判) 겸(暴) 통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學)에 제수 (除授)되었다. 묘소는 율동 독봉산(獨峰山. 우두봉(牛頭峰)) 을좌(ζ坐)에 배위(配位) 인 증(脫) 정부인(貞夫A) 수성(階城) 최씨(崔民)와 합조부우(상 %耐右) 이다. 앓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