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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향토 문화총서 @ 돌 마 마을지( T) 한항빈(韓桓秘, 1715∼1764) 휘(譯)는 항빈(↑궐物)이고 자(字)는 사상(士常)이다. 양부(養父)인 숙 (폐)의 아우인 육(淸)의 장남(長男)으로 태어났으나 큰아버지인 숙(潤)이 퉁과(登科)한 후에 천연두(天然盧)로 급서(急遊)하자 대통(大統)을 장자 (長子)에게 이어받던 관습에 의하여 큰아버지에게 입양(入違)되었다. 유 소시(助少時)뿌터 근변호학(勳뺑好學)하여 문과급제(文科及第)하고 여 러 벼슬을 거쳐 정삼품(표三品) 당히관(堂下官)인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숭차하여 삼등현령(三登縣令)으로 나가니 재촌 반가촌로(在村 班家村 老)들이, 사또의 팔 대조(八代祖)께서 삼등현령(三登縣令)을 하실 때에 선정치민(善政治民)과 제민구흘(濟民救j血)을 잘하시었고 학문도 높아 성현(聖賢)의 언행을 본보이셔서 현민(縣民)이 관장(官長)뀔 숭앙(뿜1~0) 하기를 자기부모를 대하듯 하였고, 영세불망비(永世不忘牌)와 송덕비 (煩德陣)가 세워져 있다며 안내(案內)하면서 팔대조(八代祖)의 위업(偉 業)을 본받으시라고 하여 선조(先祖)의 위덕(威德)을 지키기로 결심(決 心)하고 제민구흘(濟民救빼)과 선정치민(善政治民)을 하였더니 그 공훈 이 조정에 널떠 알려져서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가자(加資)되었으나 벼 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 학문연구에만 전념하며 문중서당에서 후학 (後學)을가르치다가일생을마치었다. 삼퉁현(三登縣)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寶)에 기록을 보면, 사 (絲), 마(麻), 자초(앓草)와 천연동(天然銷)의 주산지이고 저(橫 닥나무) 가 많아서 물산(物옳)이 풍부(豊富)하고 평양(平壞)이 가η 뷰므로 조정 (朝廷)의 세도가(勢道家)들의 요구조건(要求條件)이 많은 곳이었다고 한 다. 이 지역(地域)에는 문묘(文願)와 사직단(社樓樓), 여단CR助혐), 성황사 (城團洞)등이 있어서사림(士林)이까다롭기도소문난곳이기에,웬만한 현령들은 견디기 힘든 기피지(던避地)였다고 한다, 그러나 좋은 업적을 남기고도 벼슬에 작은 미련도 없이 사직(蘇職)하고 향리(微里)로 낙향 (落했~)하였다. 특히 홀로계신 노모(老母)에 대한 효성이 지닥하여 원근지 양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