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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66 향 토 문화총서 @ 돌마 마을지(下) 년 예조좌랑(禮暫住郞)이 되었다. 선조(宣祖) 27년 6월 26띨에는 진주사 (陳奏使) 서장관(書狀官)으로 명(明)나라에 다녀왔고 다음쐐 에는 심유경 (沈堆敬 ; 明의 遊擊將軍)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전황(戰況)을 바르게 읽는 혜안(慧|恨)이 있다는 칭송(稱煩)을 들었다. 선조(宣펴) 32년 4월에 는 남양부사(南陽府使)로 나갔다가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예빈사 정(禮 흉춤 正) 이 픽었다. 선조(宣祖) 33년 1월 15일에는 한산균-수(韓山용B守) 로 외직(外職)으로 나갔다, 선조(宣祖) 38년에는 공조정랑(工暫正郞)이 되었고 선조호성 원종공신(宣祖몹聖 頂從功닮)에 책록(冊錄)되었으며 선조(宣祖) 40년 5월 1일에는 삼척부사(三l涉府使)가 되어 외직으로 나갔 다가 광해(光海) 1년 12월 29일에 정삼품(正三品) 당하관(堂下官) 통훈대 부(通訓大夫) 군자감(軍資藍)정(正)이 되어 내직(內職)으로 들어와 이조 참의(更費參議)를 거쳐 광해(光海) 9년 3월 26일에는 통례원 좌통례(通 禮院 左通禮)까 되었고 통년(同年) 11월 25일에는 정삼품(표三品) 당상 관(堂上官) 통정대부(通政大夫) 동부승지(同副承답)가 되였다. 효성이 남달리 가룩하여 모친봉양(母親奉養)이 지극(至極)하였으며 모친(母親)이 위독(危罵)하자 단지음혈(斷指散血)을 시켜 드려 회생(며 生)하여 출천지효(出天之孝)라고 칭송(稱煩)이 자자(藉藉)하였다고 전해 온다. 글씨를 잘 썼으며 시문(詩文)에 능통(能通)하여 수백 편(數百 篇)의 주옥(珠玉) 같은 시문(詩文)을 남겼다고 한다. 진주사(陳奏使) 서장관(書 狀官)으로 명(明)나라에 갔을 때에 황성(皇城)에서 지은 〈영안〉(끓確)이 라는 시(詩) 한 수를 소개(紹介)한다. 勳門露落雅先驚, 柳H흙뺑嚴動客情, 天地-寒無處避, 不須辛행更南狂 계문상락안선경, 불효사스많객정, 천지일한무처피, 불수신고갱남정. 계문에 서렌 내리니 기러기 먼저 놀라고, 새벽을 떨치는 말(馬)이 우는아픔은나그네 마음(情)을움직이네, 천지가하나같이 추우니 피할 곳이 없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