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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원(韓仁源、, 1496∼1558) 휘(證)는 인원(仁源)이고 자(字)는 전해 오지 않는다. 어려서 학문(學 問)은 숙부(뻐父)들에게 열심히 배우고 무예(武藝)는 부친(父親)에게 배 우고 익혀 문무겸전(文武暴全)하였다. 문과급제(文科及第)로 환로(庫路) 에 나갔으나 벼슬을 크게 좋아하지 않아 정삼품(표三品) 딛룹}관(堂下官) 인 통훈대부(通訓大夫) 동복현감(同福縣藍)을 지냈으나 시문(詩文)을 좋 아하였다. 묘소는 율판(票洞) 산 6-1번지 내에 숙부인(淑夫A) 경주(慶州)이씨(李 ~)와숙부인(淑夫A) 성주(星州)이씨(李民)와 합조(合%)이다. 향토 문화총서 @ 한지원(韓智源, 1513∼156o) 휘(譯)는 지원(智源)이고 자(字)는 사달(士達)이며 호(號)는 청련(춤運) 이다. 중종(中宗) 9년 11월 30일생인데, 중종(中宗) 32년 진사시(進士試) 에 합격(合格)하고 중종(中宗) 39년 5월 29일 성균관(成均館) 생원(生員) 신백령(申 白해?)과 공동상소(共同上統)한 조광조(趙光祖) 신원상소문(↑빼 짧上짧文)은 천하명문(天下名文)으로 관학제유(館學諸備)의 찬탄(讀漢) 하는 바 되어 사림(士林)은 물론 세인(世A)마저 감탄(感歡)하여 칭송(稱 煩)이 자자하였던 명문(名文)인데 설록(實錄)에도 진사(進士) 한지원(韓 智源)이 지은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년(同年) 별시문과(別試文科) 병과(內科)에 급제(及第)하여 홍문관 (弘文館) 정자(正字)를 거쳐 인종(仁宗) 1년 6월 6일에는 여l문관검열(藝 文館檢閒)이 꾀었고 동년 6월 29일에는 중종실록(中宗實錄)의 기사관(記 事官)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명종(明宗) 원년(元年) 8월 24일에 다시 검 열이 되고 명품(明宗) 1년 9월 30일에는 경연검토관(찜鐘檢討官)이 되었 다. 통년(同年) 11월 20일에는 사간원 정언(司課院 正言)이 되었고, 명종 (明宗) 3년 6윌 2일에는 이조정랑(更費正郞)이 되어 선부(選部)의 중추인 사(中樞A士)까 되었다. 명종(明宗) 4년 2월 25일에는 사헌부지평(司憲 16。 돌마 마을지( 下) 앓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