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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세거성씨와 인물 -한동열 繼禮)가 없으면 꼴가하다고 진언(陳言)드려, 기복(起復)하여 경국대전 (經國大典)의 호전(戶典)을 맡아, 호전을 만드는 데 진력하였다. 세조 6 년(146o)에 우승지(右承답)를 거쳐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참판(工暫參 判) 겸 중추원(中樞院) 부사(副使)가 되었고, 이때부터 간경도갑(刊經都 藍) 제조(提調)가 되어 묘법연화경(妙法運華經) 언해(誠解)를 주관하였 다. 세조 7년(1461)에 좌승지(左承읍)가 되었는데 이 때에 잠서언해(廳書 짧解)를찬술(橫述)하여 백성들에게 좋은산업교범(盧業敎範)될선사(體 陽)하였고, 북정록-(北狂錄)의 교정(校訂)을 명(命)받았다. 세조(世祖) 8년 (1462)에 가정대부(嘉靖大夫) 이조참판(更뽑參判) 겸 세자 우빈객(右훌 客)이 되고 이때에 능엄경(標嚴經) 언해(證解)의 전(塞)을 썼다. 이어 오 행 위기법(五行 탤힌흉法)을 지었고, 홍천사(興天좋) 신종명(神趣銘)을 지 었다. 세조 9년(1463)에 묘법연화경(妙法運華經) 언해를 마무리하고, 인 순부윤(仁順府尹)이 되어 금강경심경(金剛經心經) 언해에 전(훨)을 썼으 며, 반야심경언해(般若心經짧解)를 완성(完成)하여 발문(版文)을 짓고, 불설아미타경(佛說阿弼院經)을 언해(證解)하였다. 세조 10年(1464)에 금 강경 삼가해 언해(金剛經 三家解 語解)를 발문(歐文)을 써서 완성하였으 며 왕명으로 병장설(兵將說)의 주(註)를 붙였다. 이 해에 세조께서 구결 (口뚫)하신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寶多心經)을 언해하았다. 세조 (世祖) 11년(1465년)에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更暫判書)겸(秉) 세 자(世子) 좌빈객(左寶客)이 되었다. 이때에 대방광원각 수다라료의경(大 方廣圓覺 備多羅了義經)을 언해하였다. 곧 이어 정헌대부(正魔大夫)로 승차(團差)되었고 육전도청(六典都廳)이 되었다. 세조 12년(1“6)에 선 부(選部)를 관장(管掌)하며 숭정대부(뽕政大夫)로 승차(陸差)등;}고 중시 (重試)와 발영시(技英試)를 관장하였다. 이 때에 동국통감(東國通藍) 편 찬에 참여하였다. 또 주자(朱子)의 주역(周易)을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쓴 역학계몽요해(易學량豪要解)를 찬술(操述)하였다. 세조 13년(1467년) 숭정대부(뽕政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고, 세조 14년(1468 앓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