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page

141 세거성씨와 인물 ·한동열 2-3. 온양방씨(溫陽方.E:t) 방춘옥(方春玉, 生沒末詳) 휘(譯)는 춘옥(春玉). 율동에서 그리 오래 살아내려 오지는 않았으나, 기미년<c.未年)에 독립운동가인 한백봉(韓百鳳)이 주도한 3.1독립만세 운동 취지에 적극 찬통하여 태극기(太極鎭)를 그리는 작업부터 열심히 참여하여 기미년 3월 26일부터 실시된 돌마(突馬), 낙생(樂生)지역의 독 립만세운동시에 선두에 서서 만세를 부르다가 일본헌병대에 체포되어 서도, 사주한 자흡 대라 는 온갖 고문에도 불구하고, “내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자진(염進)하여 나 왔다 ”고 하여 더욱 극심한 고문을 받고 뒤늦게 풀려난뒤,물산장려운동과농민운동에적극가담한숨은애국지사이다. 묘소는 율동 산 25 번지에 배위(配位) 창원황씨(昌原黃民)와 합조묘(合 %훌)이다. 2-4. 정주한씨(淸州韓民) 한계희(韓繼禮. 1423∼1482) 휘(譯)는 계희(織흉)이고자(字)는지순(字順)이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 다. 태종(太宗) 17年(1417)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장원을 하였다. 세종 5 년(1423) 9월 4일 내직(內職)인 좌대언(左代言)이던 혜(惠)의 셋째 아들 로 태어났다. 부친(父親)은 후일(後日), 함길도 관찰출척사(威吉道 觀察 點I 涉使)를 지내끄, 청산군(좁山君)으로 봉군(封君)을 받았다. 할 아버지 는 조선개국공신으로 태종과 세종조에 영의정을 지낸 문간공 상경(文簡 公 尙敬)이다 어머니, “증” 정경부인창녕성씨(體 貞敬夫A 昌寧成~)는 양혜공 달생(塞惠公 達生)의 따님이다. 세조 1년(1455) 5월 15일 졸(후)하 였다. 어려서부터 침식을 잊을 정도로 학문에 전념하여 세종 23년(1441)에 @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