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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에게서 안중근 김유술 등과 함께 수학하였다. 항일구국투쟁의 주역으로서 상해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하는 등 한 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신명을 다 바쳤다. 선생은 광복 후 고국에 돌아와 제일 먼저 충남 청양군으로 가서 면암 최익현 선생 묘에 참배하고, 이어 1947년 8월 17일 춘천 남면 가정리로 가서 의암 류인석 선생 묘소에 참배하였다. 백범은 '告柳麟錫先生墓文(고유인석선생묘문)'에서 하기를 "近古(근고)에 華西先生(화서선생)이 나시어 비로소 心卽理(심즉리)로써 門弟(문제)를 가르쳐 風氣一變(풍기일변)하여 節義輩出(절의배출)함을 보게 되니, 先生(선생)이 곧 그 한 분이시라.… 九(구)는 後凋先生(후조선생)의 弟子(제자)로서 일찍부터 先生(류인석)을 慕仰(모앙)하야 萬死一生(만사일생) 가운데도 항상 붙들고 나아감이 있었으니, 이는 곧 幼時(유시)부터 박히어진 九世必報(구세필보)의 大義(대의)라"하고 술회하였다. 선생은 남북협상 등 통일된 대한민국정부수립을 위해 노력하다 1949년 6월 26일 경교장(京橋莊)에서 라이벌 이승만 정권의 하수인인 포병장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