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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김태희 묘소 한말 일제강점기 청주지역을 중심으로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주도한 일석 김태희(1877~1936)의 묘소이다. 그는 청주시 탑동애서 태어나 한학을 배웠고, 19세 무렵 미국인 선교사 민노아를 찾아가 기독교와 서구사상을 접하였다. 1904년 방흥근, 김원배등 동지들과 광남학교(후에 청남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을 맡아 청주지역의 근대교육을 열어나갔으며, 민노아가 1904년 설립한 청주읍교회와 협력하여 경영하였다. 1907년에는 청주에서 최초의 여자학교인 청신여학교 선교사의 부인 도티여사와 함께 설립하였으며, 1924년 청남학교와 합병하여 운영하였다. 19091년 비밀결사단체인 대동청년당에 참가하여 민족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국민회 충청도회 회장, 임시정부 충청북도 독판부 참사로서 활동하였다. 1920년 6월에는 청주청년회 창립을 주도하였고, 이해 말 조선청년연합회가 조직될 때 청주청년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1921년 망선루가 헐리는 위기에 놓이자 이를 청주읍교회로 이전 복원하기 위한 시민운동에 앞장섰다. 1923년 3월 민립대학 설립총회 때에는 청주군 대표로 참여하였고, 1927년 12월에는 신간회 청주지회의 결성을 주도하고 이후 간사로서 지회를 이끌었다. 이후 신탄진으로 이주하였고, 1936년 사거하여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1959년 이곳 선영하로 안장되었다. 1963년 독립운동의 공적이 있음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그와 부인 청주곽씨의 묘소는 쌍분의 모습을 띠며 합분되어있다. 묘소 앞에는 1970년 문인들이 그의 역력을 기록해 세운 묘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