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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곡리에서 - 도종환 장렬하게 패배한 자의 생애는 아름답다 떨잎이 될 것을 예감하면서도 단풍이 불꽃으로 온 몸을 태우는 나무들은 아름답다 당당하게 쓰러진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굴욕의 나날을 살기보다 떳떳한 패배를 선택한 그들이 쓰러지면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하늘 그들의 영혼이 맑게 씻어놓은 푸른 하늘을 오늘 우리도 본다 나뭇잎이 썩어서 나무뿌리를 키우듯 그들의 영혼이 썩어서 우리 정신의 일부가 되었다는 걸 안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생은 아름답다 그들이 흘린 피를 우리는 역사라 한다 그들이 온몸으로 쓰고 간 역사 위에 우리가 서 있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이들의 한 생애는 아름답다 대나무 끝에 깃발처럼 목숨을 걸고 그들이 흔들었던 빛나는 패배의 정신 출렁이며 살아오는 불굴의 햇살은 아름답다 당당하게 패배한 자의 생애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