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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공은 목포와 영산포 등지로 농산물을 운송하는 선박을 소유하였으며 우리나라 독립운동 투사들이 비밀리에 흑산도 무안 반도 유달산 등지로 수십차례 왕래하던 중에 일본 군인들이 중국의 장개석 군인들에게 투항도 하고 귀속하는 군인들이 날로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일본은 불원간 연합군에게 항복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위 사실을 공산면 사무소에서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 이 내용을 알리다가 일경에 발각되여 허위 사실 유포하고 유언비어를 했다는 죄명으로 1944년 3우러부터 1945.8.14까지 옥고를 치루었다. 광복 후 건국 초기에는 좌우이념과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대립의 혼란 시기에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민족청년단 부단장으로 활동하고 950년 9월 4일에는 대한민국 국군 장병과 경찰들이 수복한다는 정보를 듣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환영 준비를 하다가 자유민주주의 수호신으로 희생하였다. 이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