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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4월30일 월요일 4 (제136호) 관향조 종친회 행사를주최한소윤공종중은조선초사재감소윤을지낸휘 경(景)께서 1350년 경 도진에 입향하여 두 아들을 낳으니 장 자 계손(季孫, 도진파) 차자 계분(季芬, 야정 직동파)으로 장 자의직계후손이대를이어본향(本鄕)을이루어도진에세거 하고 일부 지손들은 이웃 개진면 직리, 쌍림면 하거리, 대구 등에생활권을두고있다. 소윤공 도진마을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역할을 해오 다 지난 2월 타계한 고(故) 태규 회장을 추모하는 만시(輓詩) 를 고인과 모임을 함께해온 박씨대구연합회 회원들이 장남 창국현종에게전달하고있다. 도진리의 후예 들은 충과 효를 몸소 실천한 가문으로 유명 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창의하였고, 조선후기 향촌활 동으로 많은 지역민을 교화시켰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기미 년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4명은 애족장,23명은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는만세(萬歲)마을이되었고,6.25동란에참전공훈으 로 충무무공훈장, 광복장 등의 훈장을 받은 분이 많아 1997년 경상북도 지정 충효마을로 지정되어 이날 회의에 참석한 종 원들은 모현정을 비롯한 죽연정, 낙랑당, 부래정, 남고정, 남 와구거, 삼청재, 충효관 등 도진의 유적을 돌아보는 체험활동 으로선조님의삶을되돌아보았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뱚 ▶1면 고령박씨대종회 정기총회에서이어짐 고양대군제단-고령군상림면만남재옆에조성중에있다. 소윤공도진마을이 지금에이르기까지주도적역할을해오다지난 2월타 계한 고(故) 태규 회장을 추모하는 만시(輓詩)를 고인과 모임을 함께해 온 박씨대구연합회 회원들이 장남 창국 현종에게 전달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용택,해율,윤도,창국順) 밀성박씨 백우당공파 경모재 시향이 일요일을 맞은 지난 8 일오전10시30분부터12시까지경모재에서있었다. 이날 시향(時享)은 전국에서 찾은 50여 후손과 방계 종중인 정혜공종중 춘병 회장이 참례하여 우의를 다진 가운데 먼저 어모장군 휘 사순(士珣)을 비롯 5위(位)의 위패를 모시어 각 각 진설하고 노강 박래호 선생의 집례로 어모장군공 신위전 에 홍섭 초헌관의 헌작과 이하 신위 전(神位前)에 래천,래곤, 래현, 정상 현종이 분헌관으로 헌작하고, 재구 전 회장(고문) 의 독축에 이어 봉조 아헌관, 기태 종헌관의 헌작 한 가운데 엄숙봉행되었다. 경모재 배향선조는 어모장군 휘 사순(士珣), 백우당공(휘 상의),손자 참봉공(휘 윤감)과 그의 아들 사형제(휘 행간,행 경, 행민, 행중) 이하 후손으로 6대 15위 제향을 모신다. 백우 당공은 어모장군 휘 사순의 아들로 1538년 전남 장성군 황룡 면 보룡산 기슭에서 태어나 어릴 적 거리에서 놀 때 어떤 사람 이 보고 용모와 행동이 기이하다며 훗날 천하에 이름을 낼 사 람이다 하였다. 진원 고을 박원순 선생에게서 공부할 때 총명 한 재주가 남달라 날마다 동문생(同門生) 망암 변이중(望庵 邊以中)과 학우들이 복종하지 않은 이 없었으며,자라서는 고 금상수(古今象數)와 제자백가(諸子百家)에 통달하여 소강절 (邵康節)선생이라 하였다.월사(月沙)의 추천에 의해 봉훈랑 (奉訓郞)에 발탁되었고 관상감겸교수를 지냈다. 이어 사재감 주부(司宰監主簿), 전옥서주부(典獄署主簿), 통훈대부(通訓 大夫)에 올랐다.광해조에는 어해장군(禦海將軍)으로 용양위 부호군(龍?衛副護軍)이 되었다가 1617년(광해군 9)에 절충 장군(折衝將軍) 본위부호군(本衛副護軍)에 올랐다. 그 후 벼 슬을 그만두고,강호(江湖)에 소요(逍遙)하다가 1621년(광해 군13)에향년(享年)84세(歲)로세상을버렸다. 특히 임진왜란 때 명나라 양호 장군이 군사(軍師)로 예우하 였고, 1578년 율곡 이이, 중봉 조헌, 토정 이지함, 구봉 송익필 등과하늘의장성(長星)을보고앞으로국운을논의하면서15 년 뒤에 「靑衣賊入自國城東門」‘왜적이 장차 서울 동문으로 쳐들어오리라’하고 예언을 하였으나 누구하나 믿지 않았다. 다만 율곡 이이는 이 말을 귀담아 듣고 임진강변에 화석정을 짓고 들기름을 먹여두어 후일 선조의 피난길에 칠흑 같은 밤 에 강을 건너기 위해 이 정자에 불을 붙여 무사히 강을 건넜다 는일화를남겼다. 백우당공의아들윤감은군자감참봉으로아들중넷째매헌 공 휘 행중은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 봉양에 소홀함이 없었 고, 아버님이 돌아가심에 시묘하고, 어머님이 돌아가심에 예 법과 슬픔이 지극하였으되 상복 입은 기간이 부족하다하여 한 발자국도 시묘(侍墓) 밖에 나오지 아니하면서 6년 동안 초상 때와 같이 하였으며, 아버지 없는 어린 조카들과 어머니 잃은 생질들을 모두 보살펴 혼인 못한 일이 없게 하였고, 가난한 친 구가 별세하면 장지를 마련해주고, 오고갈 때 없는 사람에게 살곳을마련해주는등배려와나눔의실천을 평생이어갔다. 특히 중용(中庸)과 대학(大學)에 깊은 연구력을 다하여 평 생몸가짐이충효에힘을써매헌처사로통하였다. 한편 이날 제례 후 가진 정기총회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추원보본의 정성을 다하기 위해 찾아 준 일가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파보편찬 계획을 밝히 고적극적인협조를당부했다. 경모재는 2002년 신축된 건물로 본재는 경모재 출입문은 추 원문,왼쪽에관리사가있다. 이 날 회 의 에 는 수 입 및 지 출 결 산 보 고 및 예 산 안 을 원 안 대 로 상정처리하고 재준 감사는 보고에서 수입지출 등 증빙자 료와 서류정리에 있어 꼼꼼하게 잘 정리해주고 공직에 있으 면서도 종사에 심혈을 기울여준 지현 총무(나주 문평면장)에 게 치하와 함께 박수를 보낼 것을 재청하여 참석한 일가들의 박수가이어졌다. 한편 백우당공파 종중은 1969년 파보편찬 후 49년 만에 파 보편찬을 위해 이날 래지 회장을 추진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추진위원구성에대한권한을위임하고파보편찬에착수했다. 래지 회장은 추진위원장 수락인사에서 누보된 종원이 없도록 협조를 당부하고 족보편찬으로 더 많은 후손들이 종중에 참 여할수있을것으로기대한다고말했다. 밀성박씨백우당공파경모재時享봉행 어모장군휘사순(士珣)을비롯한6대15위븣파보편수위원회구성,49년만에파보 편찬 밀성박씨백우당종중경모재시향이 지난 8일오전래호집례관의창홀에 따라엄숙봉행되었다. 제향(祭享) 후후손들이 한자리에모였다. 앞줄왼쪽부터집례래호, 축관 재구,종헌관 기태,아헌관 봉조,초헌관 홍섭,회장래지順. 밀성박씨 은산부원군파 제주도종친 회(회장 박철수, 입도15세, 전 제주특별 자치도 문화진흥본부장)에서는 지난 4 월8일(둘째 일요일) 제주시 애월읍 어 음2리 소재 입도조 묘역에서 입도조(諱 厚信) 묘제를 봉행하고 이어 광령리 소 재 입도2세(諱 德起)선조님 이하 입도8 세(諱 恒寶)선조님의 묘역인 배한이 세 장지에서 묘제를 봉행한 후 제40차 정 기총회를개최하였다. 이번 정기총회는 2017년도 수입·지출 결산에 대한 승인과 2 018년도 사업예산에 대한 심의와 승인을 원안대로 가결하고 임원개선이 있어 철수 회장의 뒤를 이어 수석부회장인 학용 종친(입도16세, 前 제주도 개발공사사장), 수석부회장에 경 도종친(입도16세, 은산회보 편집위원장), 감사에 원기 종친 (입도17세, 본회 부회장),과 창수 종친(입도15세, 본회 이사, 永山易學院원장)이 각각 선임되었으며, 총무이사에는 승용 종친(입도15세, 장백종합건설 상무이사)이 선임되고 재무이 사는창배종친(입도15세)이유임되었다. 박학용 신임회장은 수락인사에서, 지난 몇 년 사이에 족 보발간과 종친회관건립에 애쓰신 전임 회장들과 임원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전임 회장들과 원로 종친들의 뜻을 잘 받들어 앞으로 종친회의 단합과 발전에 매진하겠다 고 하시며 종친들의 협조를 당부하고, 이어 이제 종친회의 위 상이 많이 달라진 만큼 종친회 회칙과 재산관리 규정을 현실 에 맞게 개정하겠다며 이를 회장단에 위임하여 주기를 요청 하여참석종원들의만장일치찬성으로위임받았다. 한편 전임 박철수 회장은 임기동안 회관건립을 마무리함으 로서 큰 족적을 남겼으며, 정기총회 후 묘전에서 준비된 음복 을 나누면서 정담을 나누고, 정기총회 후 이번에 새로 발간된 “은산회보제8호”도배부하였다. 은산회보는 매 2년 주기로 발행하며 이번에 발행된 은산회 보 제8호는 밀성재를 비롯한 추원재 보본재 등 육지의 소식과 족보발간, 회관 건립등의 경과와 헌성내역, 종원의 동정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 종원들의 보학상식과 교류확대 및 공 감대조성에도크게기여할것으로보인다. /자료제공박경도은산회보발간위원장 밀성박씨은산부원군파제주도종친회제40차定總 성료 은산부원군파제주입도조 시향에 참석한 종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은산부원군파제주입도는1580년 경으로 입도 이후 후손 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토호성씨로 성장하였으며,지난해회관 준공으로 위상이 크게달라지기도하였다. 신임회장박학용수석부회장추대븣종친회의위상이많이달라진만큼 종친회회칙과재산관리규정을현실에맞게개정예정 배한이 세장지에서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신임 박학용 회장이 수락인사 를 하 고 있다. 박학용 회장 원모정에서 바라보는 마곡지(저수지)의 풍경은 마치 한 폭 의그림을 연상케한다.그리고경산입향조요산공이호서(湖 西)청주에서 거처를 옮긴 대원리의 숲과 구렁 등 교외(校外) 의 경치에 반하여 조용히 서책을 마주 대하며 ‘아침에 도를 깨 달으며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옛 성인이 하는 말을 되새기며 성리학을탐구하였던그때를초월하여대면하는듯하다. 원모정은 입향조 요산공을 추모하는 재 숙소로 정면 4칸 측 면2칸으로 양쪽에 방을 두고 의제헌(義濟軒), 애시재(愛始 齋)라 하였으며, 가운데 대청과 앞 툇마루는 강학을 염두에 둔듯하여 아름다운 풍광과 시원한 바람은 저절로 암기가 될 만하다. 원모정의 건립연대는 1930년대 초반 착공하여 부대시설 등 을 포함 1940년 낙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선말기 문인으 로 비서감랑(秘書監郞)으로 임명되어 영친왕(英親王) 가례 (嘉禮)에 제서관(製書官)으로 일을 한 뒤에 홍문관시독(弘文 館侍讀)으로 승진된 후 비서관기주(秘書官記注)로 옮겼다가 곧 선조관(宣詔官)이 되어 통정(通政)에 오른 김홍락(金鴻 洛, 1868~1933)의 상량문으로 건축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상량문을 쓴 김홍락 선생에 1933년에 하사하였으니 아마도 사망 직전인 1933년이 될 듯싶다.그리고 1940년 봄과 동지 무 렵에쓴원모정기가있다. 이후 1986년 재사(齋舍)가 퇴락하여 중수하여 지금에 이른 다. 입향조요산공 요산공은 시조왕의 53세손으로 성종 22년(1491) 휘 빈(彬) 의 아들로 태어났다. 휘(諱)는 운달(雲達) 요산(樂山)은 호 (號)이다. 허백당 홍귀달의 문하에 나아가 수학하여 26세 되 던 중종 11년(1516)무과에 급제하고 31세에 선전관이 되었으 며, 서포서 별검을 거쳐 중종 25년(1530년) 40세에 봉상시 주 부를 지냈다. 50세 무렵 청주에서 경산 진량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은둔하며 발분 면학하였으며, 이웃 고을인 청도의 삼족당 김대유, 소요당 박하담과 교유하며 시작과 도학의 담론을 나 누고 명종 13년(1558년)68세로 별세하였다. 추모당은 요산공께서 입향이래 진량읍 현내리와 마곡리 속 초리 등지에 선조님들의 묘소가 산재해 있었으나 지역개발로 인해선영(先塋)들이편입됨에따라1998년진량읍신제리산 34번지에 합동 안치하였으나 경산 산업단지가 더욱 확장됨에 따라 산림의 훼손을 막고 장묘문화 개선을 위해 지난해 진량 읍 마곡리 원모정 옆에 합동 추모당을 마련하여 이안(移安) 새롭게안치하였다. 지난 달 29일 이안 고유례를 올린 경산 요산공 문중 재균 회 장은 이 자리에서 납골당을 옮긴 배경과 공사개요를 상세히 설명하고 향후 추모당 운영배경을 밝히며 요산공 문중의 성 지가될것으로보인다며많은성원을당부했다. 특히 추모당의 참배 성손을 위해 원모정에서 편히 쉬었다 갈수 있도록 하여 선조님의 음덕을 가슴에 담을 수 있도록 하 고 후손이면 누구든 언제든 편안히 쉬었다 가는 힐링의 장소 로기대해도좋을듯싶다. 한편 고유례에서 재균 회장은 전임 승호 회장에게 추모당 이안과 종중발전에 지대한 공을 감사드리며 종원들의 이름으 로공로패를전달하고지속적인지도편달을당부했다. /박방무명예기자(경북경산시지부) 원모정(遠慕亭)과추모당(追慕堂) < 경 북 경 산 시 진 량 읍 마 곡 리 산 68 번 지 > 원모정과 추모당전경 뱚재/실/탐/방 뱚원모정(遠慕亭) 원모정에후손들이 발길이 이어지고있다. 뱚▲입향조요산공 뱚추모당(追慕堂) 추모당-250기의 유골을 안치할 수 있는 추모당은 현재 60여기의 유골이 안치되어있다. 지난 달 29일추모당이안 고유례에참석한 후손들이 한자리에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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