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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 을미의병추모제, 매년10월 28일 양평의병묘역에서 봉행 ▲ 의병전투지 용문면 다문리 장대마을 〔✒전거〕「下沙安公乙未倡義事實(下)」, 박정수 〔F자료2, 220쪽〕 4.25호좌의진, 전날 전군장 임명을 받 은 정운경(鄭雲慶) 대장소에 인사 / 새 관직인 참령(參領) 장기렴(張 基濂)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충주에 부임 〔✒전거〕「下沙安公乙未倡義事實(下)」, 박정수 〔F자료2, 220쪽〕 경병대장 장기렴 등이 충주에 병력 을 끌고 내려와 의병해산을 효유 〔✒전거〕『山居漫錄-附,日記』, 장충식 〔F자료3, 269쪽〕 4.26호좌의진, “서울 병정이 충주 용당 (龍塘)에 들어와서 장차 가흥(佳興) 의 적과 합하여 제천(堤川)을 치려 한다”며 운량감독(運糧監督) 이범 직(李範稷)이 보고 / 지평에서 전 몰한 장사 손덕화(孫德化)·김정순 (金正純)·김성화(金聖化) 3명을 망 제(望祭) / “적장 장기렴이 강을 건너 황석(黃石)으로 들어왔다”고 이향구·정운경(鄭雲慶)이 두 번째 보고하므로 이강년(李康䄵)이 군사 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나감 / 대 장소의 종사 심이섭(沈理燮)·홍병 진(洪炳晋)·이근영(李根永)이 말미 를 얻어 서울로 올라갔다가 적의 편이 되어 내려옴 〔✒전거〕「下沙安公乙未倡義事實(下)」,박 정수 〔F자료2, 222쪽〕 4.28호좌의진, 위로부터 칙유서(勅諭書) 와 심이섭·홍병진 등의 흉악한 글 이 모두 왔는데, 군사를 해산하고 선유서에 따를 것을 권했고, 연호 와 글 내용이 모두 자주국(自主國) 으로 써서 “건양(建陽) 원년 5월 일”이라고 씀 〔✒전거〕「下沙安公乙未倡義事實(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