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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조칙 반포 가 서로 다름, 학계는 「하사안공 을미창의사실(下沙安公乙未倡義 事實)」의 기록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임;편자 주) / 지 평(砥平) 포군(砲軍) 영솔장(領率 將) 오장문(吳莊問)이 관부의 문서 를 흩어버리고 주민을 공갈한 죄로 참수하여 머리를 북문 안에 효수 / 중군 종사 오명춘(吳命春)이 김규 식을 체포, 이튿날 북문 밖에서 참 수하여 3일간 효수 〔✒전거〕「下沙安公乙未倡義事實(上)」, 박정수 〔F자료1, 172쪽〕 어제(2.17) 체포한 삭발자 전원 석방 〔✒전거〕『山居漫錄-附,日記』, 장충식 〔F자료3, 265쪽〕 ▲ 1896.2.18 의병이 점령했던 충주관 (1983년 원형을 살려 복원) 2.19호좌의진, 적이 충주부를 습격하여 크게 싸운 후 가흥으로 복귀 〔✒전거〕「下沙安公乙未倡義事實(上)」, 박정수 〔F자료1, 174쪽〕 충주관청에 진을 치고 백성들을 불 러 술을 사고, 소를 잡아 사졸들을 먹임 〔✒전거〕『山居漫錄-附,日記』, 장충식 〔F자료3, 265쪽〕 2.20호좌의진, 유주막(有酒幕)·금관(金 串)·탄금대(彈琴臺)·단월(丹月)등 아 홉 곳의 좁은 목에 홍대석(洪大錫)· 정익(鄭瀷)·황주목(黃疇穆) 등 장수 들을 보내 경계 / 대장의 종사가 되어 행동이 방자해진 민의식(閔義 植)을 참수하려했으나 멀리 가 있 어 실행하지 못함 / 판서(判書) 정 해륜(鄭海崙)의 집에 가서 군수품 을 독촉해서 받아들일 때 무례하게 한 군관 임경준(林景俊)을 참수하 려다 여러 사람들이 힘써 구원하여 처형을 면함 / 파수장 홍대석(洪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