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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습격에 놀라 극도로 혼란을 일으켜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이 전투에서 송본(松本) 보조원은 용전(勇戰)의 결과 마침내 발에 좌상(挫傷)을 입어 보 행의 자유를 잃게 되었다. 적도는 시체 2를 유기하고 부상은 확실치 않으나 원주민의 말에 의하면 30명을 넘을 것 이라고 한다. 노획품은 다음과 같다. ① 승마(乘馬) 6두 ② 화승총 33정 및 긴 칼 1자루 ③ 등(燈) 2개 ④ 자물쇠로 봉한 도장 상자 1개(창의군 도장 1개) ⑤ 가방 1개(중요 서류 수통) ⑥ 소 2두 (23) 융희 원년 11월 14일. 일본인 고도(高嶋佐吉)·고야(高野榮吉)의 2명은 전선 재료(電線材料)를 운반하던 중 고양 군아(郡衙) 북쪽 약 10리의 벽제리 부근에서 1백30명의 폭도의 습격을 받아 살해되고 운 반 중이던 전선 재료 전부를 약탈당하였다. 이날 그 폭도들은 고동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던 차에 전(畑) 보조원이 지휘하는 경찰대 의 습격을 받아 전선 재료는 다시 전부를 탈환하였다. (24) 융희 원년 11월 21일 오전 11시. 양지(陽智)경찰대는 양지군 고안면(高安面) 태양동(太陽洞)에 폭도 약 40명이 집합하고 있음을 탐지하고 이를 포위 공격하여 1명을 죽이고 4명을 생포하였다. 또 화승총 6정, 화약·군도 약간을 노획하였다. (25) 융희 원년 12월 2일. 폭도 약 40명이 회암면(檜岩面) 우산리(牛山里)에 집합한 급보에 접한 보조원 중촌(中村 武治)·장강(長岡荒吉)·교본(橋本武治)·신미(新美源一郞) 및 순검 4명의 경찰대는 헌병분견 소원과 함께 출발, 오후 4시 오산리(午山里)에서 약 1천 미터 거리의 지점에 이르렀을 때 오산리 동남쪽 약 6마정 거리의 고지(高地)에 전망초(展望哨)를 둔 적도는 우리를 발견하 고 동내에 통보하자, 적도는 동내 남쪽 약 5리 거리의 송림으로부터 저격을 하기 시작하 였으므로 이에 응전하여 약 1시간 교전한 결과 적도는 어둠을 이용하여 점차 후방으로 퇴각, 마침내 종적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