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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작동, 2일 가평군 봉수리, 3일 영평군 일동면으로 이동 1909. 2. 4 연합의병 200명, 영평군 일동면에서 영평과 포천 헌병토벌대의 공격을 받아 2시간 교전한 뒤 다시 영평, 주포, 포천 연합수비대와 교전 1909. 2. 5 연합의병 200명, 추격해 온 영평, 포천 연합헌병대를 영평군 일동면 노곡리 에서 기습 공격한 뒤 포천 쪽으로 물러감 1909. 2. 7 이은찬, 윤인순 연합의병 100명, 포천군 내동면 오림리에서 양주 헌병분견 대의 응원을 받은 토벌대와 교전, 그 뒤 이은찬은 부하 20명과 포천군 동촌 면 화현리에서 포천수비대의 불시 공격으로 부상, 윤인순과 김교성은 각기 부하를 이끌고 영평, 양주 쪽에서 활동 1909. 2. 8 이은찬, 윤인순 연합의병, 영평군 일동면과 이동면 촌민에게 결사대를 조직 하여 경성으로 감행시켜 일본 고관저택에 폭탄 투하할 것이라는 담화 1909. 2.11이은찬 부대, 군수금 제공에 불응한 양주군 노원면 면장 납치 1909. 2.13 이은찬 부하 6~7명, 양주군 이담면 성황당에서 유산리 허병의 밀정을 납치 하여 처단. 이은찬 부하 8명, 영평군 군내면 양문리 동장과 부민을 납치하 여 일동면으로 이동, 이은찬, 윤인순 등은 영평군 면장과 동장에게 세금을 의군(義軍)에게 납금하라는 격문 배포 1909. 2.16의병 7명, 양평군 고읍면 사천리 사나사 습격 1909. 2.17 이은찬, 윤인순, 정용대 연합부대 100명을 포함한 주민 300명, 양주군 석적 면 행동리에서 북한산 헌병파견대, 고양 헌병분견대, 양주 헌병, 경관연합 대, 유산리 헌병분견대의 합동 공격에 응전 1909. 2.20 이은찬 등 연합의병 150명, 포천군 가산면 용단동에서 포천수비대 및 순사 대와 교전 1909. 2.24 이은찬 부하 4~5명, 여영군 일동면 기산리에서 영평에서 경성으로 가는 우 편물 가운데 현금은 한국 신민으로부터 징수한 것으로 왜적 관리의 회(懷) 를 배불리는 것이므로 이를 탈취하여 한국 빈민을 구휴함은 우리 의병의 의 무라고 담화 1909. 2.25 이은찬, 윤인순, 정용대 연합의병 170명, 양주군 석적면 항동(項洞)에서 양 주 경찰서에서 출동한 토벌대와 2시간 교전한 뒤 적성군 남면쪽으로 물러 감, ‘우군장 윤인순’의 명의로 고시문을 곳곳에 붙이고 혹은 순사주재소와 헌병분견소로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