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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상렬(相烈)은 덕은 박하여 감화를 못시키고, 위엄은 부족하여 진압을 못 하는데, 더구나 남쪽 지방의 인심이 굳건하지 못하고 군사 일에 익숙하지 못하여, 적을 보고 달아나서 마 침내 실패를 가져오게 되었소. 지금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여 급히 다시 계획을 서두르고 있소.” 하였으므로, 공은 답서를 보내어 권면하였다. 신지수(申芝秀)가 군사를 거느리고 북창(北滄)으로 왕래하면서 도전(挑戰)하고 또 왜적이 설치한 전선(電線)을 끊어서 적을 격노시켜 빨리 나와 싸우게 하고 맞아 공격하려 하였는 데, 적이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않았다. 우군장 안성해(安成海)가 장사하는 아이 위운룡(魏雲龍) 등 3명을 잡아 보냈는데, 공은 심문하고 놓아 주었다. 그러나 이로 보아 각 진중에서 경계를 주밀하게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윤성호(尹聖鎬)가 공의 온 식구들과 함께 지평(砥平)에서 왔다. 이때 윤성호는 민의식(閔義植)이 강릉으로 도망해 잡을 수 없으므로, 마침내 흩어진 군사 약간을 수합하여 돌아와서 진동소(鎭東所)에 들이고, 원래의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왔다. 적 이 다시 내창(內倉)으로 들어오니 여러 장수들이 복병하고 기다리며 기각지세(犄角之勢 ; 적을 앞뒤로 몰아치는 형세)를 형성하려 하였다. 그러나 적의 경보가 자주 일어나서 안팎 의 경계를 엄히 하였다. 28일(양력 4월 10일;편자 주), 이범직(李範稷)의 보고에 “손 소모장(孫召募將)이 군사 4초(哨)를 거느리고 와서 본진에 모였고, 또 모집한 진천(鎭 川) 포병 중 흩어져 도망갔던 자들이 많이 와서 따라붙는다.” 하였다. 우군(右軍)에서 화약과 탄환을 보내어 의외의 변고에 대비하게 할 것을 청하므로 허락하 였다. ○ 이강년(李康䄵)이 문경(聞慶)의 적을 토벌하였다. 그때 중군(中軍) 윤기영(尹基榮)이 문경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적을 만났으나, 적은 많고 이 편은 적어서 대적할 수 없음을 알고, 군사를 퇴각시켜 복병을 하려 하니, 많은 군사들 이 일시에 무너져 흩어졌는데, 이강년만이 거느린 군사를 온전히 가지고 평치(坪峙)로 들 어왔다. 군수품으로 금전과 물자를 전군(前軍)에 보내고, 고교(高僑)의 좁은 목에 파수병을 둘 것 을 의논하였다. 이때, 적병이 다시 내창(內倉)으로 들어오고, 남쪽 경보가 한창 급하기 때 문이었다. 본 고을 문루(門樓)에 올라가 군사들을 점고(點考 ; 사열)하였다. 본부(本府) 형리(刑吏) 조철식(趙哲植) 등을 불러다 문서 만드는 일을 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