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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 정묘일(2일, 양력 1896년 3월 15일;편자 주), 경암(敬庵)의 편지가 도착하였다. 소모장 서상렬(徐相烈)이 안동에서 편지를 보내어 권면(격려)했는데, 그 말이 매우 장렬(壯 烈)하였다. ○ 동헌(東軒)에 나아가 군사들과 맹서하였다. 그 말에 대략 이르기를 “농사짓는 이는 군사들을 공급하여 주리고 흩어짐이 없게 하며, 군사들은 백성을 보호하 여 머리 깎는 것을 면하게 하니, 서로 협조하는 것이 이와 같다. 너희들은 절대로 백성을 침략하지 말고 가는 곳마다 인심을 얻는 것으로 근본을 삼아라.” 하였다. ○ 독송정(獨松亭)에서 진법을 연습하였다. 옆에서 국수 한 그릇을 드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공은 받지 않으며 말하기를 “군사들에게 같이 나누어 먹이지 못하는데, 내 어찌 차마 혼자만 먹겠느냐.” 하였다. 포병 이범홍(李範洪)·김덕준(金德峻)이 함께 모친상을 당하였기로 모두 가서 상사를 치르 게 하고, 부의를 많이 주어 보내었다. 공은 앉으나 일어서나 깊이 탄식하여 근고하고 조심하여 곁의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였다. 고을 아전이 일찍이 고기 반찬을 드렸는데 노하여 돌려보냈으며, 그 고심하는 것은 오직 재물을 손상하고 백성을 해하여 주·군(州郡)에 폐를 끼칠까 두려워하였다. 근무가 고되고 많으며 응수(應酬)가 번거로워서 밥 먹고 잠자는 겨를조차 없었으니 새벽에 일어나서 혼자 앉아 옛 교훈을 외우는데 매우 들을 만하였고, 입으로 송사를 판결하며 손으로 편지 답장 을 쓰는데 언사가 쉽고 민첩하고 붓끝이 물 흐르는 것 같아서 옛날의 도형주(陶荊州)와 유 목지(柳穆之)의 기풍이 있었다. 일찍이 여러 부하 장수들이 각기 밥상을 갖추어 식사하는 것을 보고 걷어치우게 한 다음, 큰 그릇에 담아 사병들과 같이 먹게 하였다. 군사들과 약 속할 때마다 말하기를 “국모의 형체가 불에 타서 재가 되었으니 그 오르내리는 영혼이 너희들만 바라고 있으며, 임금께서 형체를 훼손(毁損)하고 문명이 변하여 오랑캐가 되었으니, 천지신명은 너희들만 믿고 있다. 너희들 한 몸에 매인 바가 또 한 중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은 전일의 몸으로 생 각하지 말고 모두들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서 일하는 몸으로 생각하라.” 하며, 또 말하기를 “오늘에 당면한 일은 사람마다 각기 제 힘을 다하여야 한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다. 비록 뛰어난 재주와 지혜를 가졌을지라도 반드시 특수한 대우를 받아야만 나온다는 것 은 도리가 아니다. 저 옛날의 이윤(伊尹)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이라도 반드시 3번이나 방문 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일어났을 것이니, 똑같은 원수요, 똑같이 당하는 강제삭발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