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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 청송의 독립운동사 진은 안덕현 근곡斤谷(혹은 속곡束谷)으로 물러나 있었다.105) < 감은리 전경> 이날 정오에 관군은 의병이 매복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안덕을 향 해 성황현까지 행군해 왔다. 이때 의진에서 천보총으로 일제히 사격을 가 하자 앞서 들어오던 관군은 곧 흩어져 후퇴하였다. 이어 사방에 매복해 있던 의병들이 일제히 추격하여 관군 10여 명을 사살하였다. 관군은 크게 무너져 앞산을 향해 도망쳤다. 총을 잘 쏘는 의병 10여 명이 다시 총을 쏘아 관군 수십 명을 쏘아 죽이니 관군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졌다. 얼마 후 달아났던 관군이 다시 의진을 공격했으나 김하락은 포를 쏘아 적을 추적하였다. 이때 청송의진의 중군 김대락이 포군 2대를 이끌고 앞산으로 부터 달려와 호응하였다.106) 당시 청송의진은 이천과 의성 양진이 이미 접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 었다. 이에 대장 심성지는 근곡에 머물고 중군 김대락‧진무 정진도‧소모 심능장‧참모 오세로‧서기 윤도혁尹道爀‧외방장 안병룡安秉龍‧군사 이경식 105) 沈誠之, 赤猿日記 (필사본), 1896년 4월 초2일자. 106) 金河洛, 「陣中日記」,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집,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6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