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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독립유공포상자 열전 / 319 14. 김태진金泰鎭 : 1928. 2. 17~1904. 8. 9. 청송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 을 전개하였다. 청송의진은 1896년 3월 청송향교에 유림 200여 명이 모여 거의를 결의한 후 심성지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김대락金大洛을 중군장, 남두희南斗凞를 우익장, 서효원徐孝源을 의영도지휘사義營都指揮使로 임명 하는 등 진용을 갖추었다. 이때 김태진도 의진편성에 참여하였다. 1896년 5월 14일 청송의진은 인근지역의 김상종金象鍾 및 김하락의진金 河洛義陣과 연합하여 감은리甘隱里 뒷산에서 관군 7∼8명을 사살하는 전 과를 올렸다. 계속해서 마평馬平과 경주 인부人夫 등지에서 교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다. 같은 해 5월 청송의진은 좌익장 권성하 등으 로 하여금 3초哨의 군사를 이끌고 영덕의진을 지원케 하는 등 인근지역 의진과 연계하여 활동하기도 하였으나, 고종의 해산 조칙에 따라 해진解 陣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赤猿日記(毛筆草本), 晩悔堂遺稿(毛筆草本, 作成年度未詳) 62·63쪽. 15. 남두희南斗熙(이명; 斗凞) : 1850. 1. 29~1924. 12. 14. 청송의진에 참여 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896년 1월 안동의진의 소모장인 유시연柳 時淵이 청송에 들어와 군기를 요구하고, 외지에서 거의를 촉구하는 격문 이 전해지자 유림들은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의진결성을 추진하였 다. 그리하여 청송향교에 유림 200여 명이 모여 거의를 결의한 후 심성 지를 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이때 남두희는 우익장에 선임되었다. 1896년 5월 14일 청송의진은 인근지역의 김상종金象鍾 및 김하락의진金 河洛義陣과 연계하여 감은리甘隱里 뒷산에서적군과 조우하여 교전 끝에 적군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어 마평馬平과 경주 등지에서 교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다. 이후 청송의진 좌익장 권성하 등이 영덕의진을 지원하는 등 인근지역 의진과 연계활동을 펼쳤다. 그러 나 고종의 해산 조칙에 따라 해진解陣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赤猿日記(毛筆草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