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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 청송의 독립운동사 제5절 1930~40년대 청송인의 국내외 독립운동 1. 안동농림학교 학생비밀결사운동과 청송인 1) 일제의 학교 병영화 정책 1920년대까지 학생운동의 보편적인 투쟁형태는 동맹휴업이었다. 그러나 1931년 신간회 해산 이후 동맹휴업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소수 정예의 비밀조직으로 일제 통치에 대항하였다. 특히 사회주의 성향을 강하게 띠 었으며, 노동‧ 농민운동과 결합하여 운동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는 달리 언론기관이나 종교단체가 주도하는 계몽운동을 중심으로 합법 적인 운동을 전개하는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1940년 이후부터의 학생 운동은 계몽운동, 실력양성운동의 형태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력항쟁을 기도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였다. 이러한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일본의 패전이 예상되는 객관적인 정세의 변화였다.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전시체제를 더욱 강화시키면서 전쟁 수행을 위한 공출‧ 징용‧징병 등 수탈을 극대화시켜 나갔다. 이를 위해 1938년 3월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여 일본인과 같은 교육방침 아래 황국 신민을 길러내고자 하였다. 교육령의 개정으로 조선어는 필수과목에서 삭제되고 선택과목이 되었 지만, 공립학교에서는 이마저도 대부분 제외되고 말았다. 또한 역사와 지리 과목의 중심내용은 천황숭배사상을 주입시키는 것이었다. 1943년 3월에는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여 군사교육‧노무동원 과목을 대폭 도입 하고, 수업연한을 단축하여 학생들을 전시에 동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육군특별지원병임시채용규칙’을 공포하여 학생들을 징병하였다. 또한 1944년에는 ‘학도군사교육 강화요강’과 ‘학도동원 비상 조치요강’을 발표하여 학생들을 군사조직으로 바꾸고 근로동원태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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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절 1930~40년대 청송인의 국내외 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