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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 청송의 독립운동사 3) 일제의 경제수탈과 청송의 경제적 상황 1920∼30년대 청송지역에 일본인이 적게 거주했다고 해서 일제의 침략 정책이 청송을 빗겨갔다는 것은 아니다. 1920년대는 식민지 경영의 근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탈기구가 더욱 체계화되던 시기였다. 일제는 수탈 농정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농민과 농업전반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농업지배기구를 만들었다. 이 중 대표적인 수탈기구가 농회와 금융조합‧ 어업조합 등의 각종 농업단체와 산업단체였다. 청송군에서도 이러한 단체 들이 하나, 둘씩 조직되기 시작했다. 청송군농회는 1926년에 청송군청에 의해 조직되었으며, 역원임명‧ 예 산집행‧사업시행 등 거의 모든 활동이 관 주도로 통제 운영되는 관제 조직이었다. 이들의 주요업무는 농사개량을 위한 홍보선전사업, 비료자 금의 공동구입 알선, 면화‧양잠공판사업 등이었다. 즉 일제는 ‘농회’를 통해 일제의 주요 수탈품목이었던 쌀‧면화‧고치를 재배하는 농민들을 통제하였으며, 생산된 농산물은 지정공판제를 통해 싼값으로 수탈해 갔다. 청송군농회가 농업을 통한 직접지배기구였다면 금융조합은 금융수탈 을 위한 기구였다. 금융조합의 실제적 운영권을 가진 이사는 거의 일본 인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회의 비료자금과 공동구입 알선사업 은 대부분 동양척식회사‧금융조합 등을 통해 운용되었다.93) 그러나 금 융조합의 대부자금은 주로 지주와 자작농 및 그 단체에 한하여 대출되 었기 때문에, 자소작농과 소작농은 사용권에서 제외되어 고리자금을 쓰 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금융조합자금이 지주들의 고리대자금으로 전락한 것이다. 93) 朝鮮總督府, 慶北大鑑 中, 韓國地理風俗叢書(61),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