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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8 - 임경석, 「파리장서 서명자 연구」(『대동문화연구』38, 성균관대학교, 2001)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덕곡면 3·1 만세시위(德谷面 3·1萬歲示威) -분야 : 역사/근현대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원송리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정의] 1919년 3월 29일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원송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역사적 배경] 3·1운동은 국내외의 긴박한 정세에서 발생의 배경을 찾을 수 있다. 1914년 일 어난 제1차 세계 대전과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변화된 세계정세는 민족 문제 에 대한 자각을 높이고 한반도를 비롯한 피압박 약소민족의 해방을 고무시켰 다. 1918년 1월 제1차 세계 대전을 마무리하는 원칙으로 미국 윌슨 대통령이 내걸은 민족 자결 주의도 식민지 피억압 민족에게 독립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일제는 강제적으로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뒤 ‘군사적 제국주의’ 차원의 폭력성 이 내포된 무단 통치를 실시하였다. 일제는 식민지 수탈 구조의 구축 작업을 추진하였는데, 먼저 식민지 조선의 금융 지배를 위해 화폐 정리 사업을 착수 하였다. 근대적 운송망의 구축 역시 일제가 일찍부터 착수한 것인데, 경부선 철 도의 부설이 그것이다. 이에 고령은 낙동강 수운을 통한 경제 활동에 타격을 입 게 되었다. 또 일제는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해 일제 자본의 자유로운 농촌 침투와 그 지 배를 실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령 지역의 많은 토지 소유권이 일제로 바 뀌는 결과를 낳음과 동시에 식민지 지주제가 관철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는 이런 정책의 온전한 수행을 위해 모든 행정력과 경찰력을 동원하였다. 그 과정 에서 일제의 폭압성과 강제력이 자행되어 지역민은 수탈과 지배를 받는 고통 을 겪게 되었다. [발단] 3·1운동 만세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 나갈 때, 고령군 덕곡면 원송리에서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