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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6 - 3. 근•현대 인물 ●곽걸(郭杰)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자는 회주(晦周)이고 호는 국전초부(菊田樵夫)이다. 구 담(龜潭) 후근(厚根)과 정(禎)의 딸인 김해허씨(金海許氏) 사이에서 고종 5년 (1868년)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서 태어났다. 당숙(堂叔) 영근(塋根)에게 출계 (出系)하였다. 공은 어릴 때부터 선고께서 남려(南黎) 허유(許愈), 만구(晩求 ) 이종기(李種杞),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과 더불어 도의(道義)로 교유(交遊 ) 하였던 관계로 유가(儒家)의 가르침과 가학(家學)에 영향을 받아 고풍(古風)을 즐겼고 맑고 높은 명망(名望)이 있었으며 가르침에 교화(敎化) 되어 넓게 베풀 었다. 공은 1919년 3월 파리강화회의(巴里講和會議)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 기 위하여 곽종석(郭鍾錫), 김복한(金福漢) 등이 유림 대표로 작성한 독립청원 서(獨立請願書)에 서명한 연서자(聯署者) 137명 중 123번째로 서명하는 등 항 일 운동(抗日運動)을 전개하였다. 경북 성주의 만세시위운동(萬歲示威運動)과 관련하여 1919년 4월 12일 서명자의 한 사람이었던 송회근(宋晦根)이 피체(被 逮)되면서 발각되어 사건의 전모(全貌)가 드러나자 공도 이때 피체(被逮)되어 모진 고초(苦楚)를 겪었으며 끝내 병(病)을 얻어 1926년 6월 6일 향년 59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 국전촌(菊田村) 뒤편 술좌(戌坐)에 있다. 1998년 8월 14일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功勳)을 기리어 건국포장(建 國褒章)을 추서(追敍)하였다. 2012년 6월 7일 ‘애국지사(愛國志士) 곽걸(郭杰 ) 선생 추모비 건립추진위원회’에서는 후손들이 공의 독립운동 업적을 기리기 위 해 성금을 모아 산소를 새 단장하고 추모비(追慕碑) 건립하였다. 배위는 기원 (基源)의 딸인 서산유씨(瑞山柳氏)로 합폄(合窆)이다. 참고문헌 : 유림의 독립운동, 현풍곽씨 예곡공, 태허정 파보(임술보)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 ● 곽수빈(郭守斌)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자는 사언(士彦)이고 호는 몽와(夢窩)이다. 아버지 치 송(致崧)과 남수(南秀)의 딸인 어머니 순천박씨(順天朴氏) 사이에서 둘째 아들 로 고종 19년(1882년) 임오년 고령군 임천면 월막동 109번지에서 태어났으나 숙부 치안(致安)에게 출계(出系)하였다. 공의 집안은 예곡(禮谷) 곽율(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