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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8 - ●최순곤(崔淳崑)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초명(初名)은 순벽(淳璧)이고 자는 치옥(致玉), 호는 율 봉(栗峯)이다. 요암(饒庵) 인석(寅錫)과 통정대부(通政大夫) 극규(極奎)의 딸인 성산전씨(星山全氏) 사이에서 고종16년(1879년) 3월 28일에 학동(鶴洞) 옛집에 서 태어났다. 생김새가 밝고 뛰어났으며 재주가 보통사람과 달랐다. 처음에는 선고(先考) 요암공(饒庵公)에게 배웠는데 글자와 글의 뜻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즉시 알았다. 요암공(饒庵公)이 매우 사랑하였으나 해이(解弛) 하지 않 토록 가르침을 엄격히 하고 문사(文詞)를 가르침에 더욱 독촉을 하여 정문(程 文)이 일찍이 이루어졌으며 또한 각체(各體)가 정세(精細)하고 묘하였다. 부모 님을 모심에 정성을 다하였으며 4형제가 침식을 같이하면서 우애를 나누었다 . 부친의 명(命)으로 폐백(幣帛)을 갖추어 만구(晩求) 이종기(李種杞)를 찾아뵙고 문하생(門下生)이 되었으며 농산(農山) 장승택(張升澤) 선생과 경전(經典)을 경 서(經書)의 뜻을 토론(討論)하고 질문하였으며 폐백(幣帛)을 갖추어 면우(俛宇 ) 곽종석(郭鍾錫) 선생을 찾아 뵙고 유도(儒道)를 강설(講說)하고 밝히어 향중(鄕 中) 사림(士林)이 추중(推重)하였다. 그 후에 향리 후생들이 책을 끼고 가르침 을 청하였을 때 가르침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학칙(學則)을 엄격하게 지켰고 혹은 학칙(學則)을 지키지 않을 경우 책임 있는 모든 학생에게 태장(笞杖)을 가하셨다. 하루 종일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문 채 무릎을 모으고 똑바로 앉아 있었다. 1960년 9월 19일 향년 82세로 졸(卒)하였다. 묘는 고령군 쌍림면 서 쪽 합가동 용당곡(龍塘谷) 각씨등(角氏嶝) 갑좌(甲坐)에 있다. 묘갈명(墓碣銘)은 성산인(星山人) 극암(克菴) 이기윤(李基允)이 지었다. 시문집(詩文集)인 율봉유 고(栗峯遺稿) 3권 1책이 전한다. 배위는 기용(琪鎔)의 딸인 김해김씨(金海金氏 ) 이다. 註1) 정문(程文):과거(科擧)의 고시장에서 쓰이는 일정(一定)한 법식(法式)이 있 는 글 註2) 각체(各體):서체, 글자체, 문체 따위의 여러 가지 체. 참고문헌 : 율봉유고(栗峯遺稿), 양천최씨 세보(임술보) ●최인석(崔寅錫)